해외에 나온 지도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놀라울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간 첫해였다.
우리 집은 정확한 한국 복귀 시점이 정해져 있는데 드문 케이스다.(남편의 주재기간은 돌발 상황 등의 변동이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회사에서 허가해 주는 휴직의 기간이 한정적이다.) 보통은 대략의 기간만 정해서 나오거나 연장되거나 혹은 아예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실 우리는 애초에 아이들이 해외에서 체류할 학년의 애매함에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보통은 3년 이상의 체류에는 소위 3 특이라는 대입 특례전형을 고려하는데, 우리 아이들의 해외체류는 대입 전형에서 특별케이스로 분류되는 기간에서 해당되지 않는다. 3년 이상 체류자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해외에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등 어린 시절에 지내다 가는 경우에는 한국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적응을 금세 하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로 복귀 하기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에 있어도 어차피 평범한 애들일 테니 이렇게 잠시 해외 나온다고 특별히 손해 볼 것 없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부부가 결정해서 나왔지만 막상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게 내가 여기서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고민이 깊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한국공부를 아주 쪼끔씩 병행하고 있다.
보통 해외에 몇 년 산다고 한국인이 모국어를 잊는 건 허세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퇴보한다. 발음이 교포처럼 된다거나 모든 문장에 영단어를 섞어서 쓴다거나 하는 정도의 말하기 변화는 아니더라도 국어 어휘 수준이 증가하지 않는다거나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등의 문제는 몇 달만에도 발생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한국어 교과서만 읽어도 어쨌든 읽기 능력은 상승할 텐데, 한국말은 겨우 엄마 아빠 잔소리 폭격이나 형제나 한국인 친구들과 놀 때에 쓰는 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노출이라며 영어 듣기 읽기를 마구 시킬 때 우린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진지하게..노출이 안되면 모국어도 수준이 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국어가 알게 모르게 늘고 있는 아이들을 칭찬해줘도 될 것같다!)
이런 문제들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왜 해외생활한 친구들을 별도전형으로 뽑아줘야 하는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초중고에 유학이 쉽지 않은 나라라 거의 대부분 부모의 사정(주재원, 현지취업, 이민 등)으로 이곳에 나와있으니 자녀인 어린 친구들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니 국내 교육을 택하고자 한다면 입시할 때에 해외에서의 공부경험과 관련된 평가를 해주는 배려가 필요한 듯도 하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전형에 포함되지 않을 예정이고 딱히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는 타입도 아니기에 정말 최소한의 감각만 유지하는 쪽으로 한국 공부를 병행 중이다. 다만, 영어는 노출이 많이 되고 있기에 (한국식 수험영어는 또 따로 공부해야겠지만) 일단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점은 장점이다. 그리고 프로젝트나 참여형 수업이 기본인 수업방식이 초등과정부터 당연하기 때문에 경험적으로는 좋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해외에 체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지인들은 '영어 잘하게 되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종종 했는데, 한 편으로는 맞는 말이고 한 편으로는 한국어를 놓치면서 명과 암이 있는 부분이 있다. 어쨌든 생각보다는 노력을 배로 해야 하는 이 생활을 아직은 적응기라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가늠이 안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한국에서 회사생활 했으면 내가 이렇게 아이들의 교육을 치열하게 고민했을까 싶어 주어진 이 시간이 감사하기도 하다.
복귀 시점이 정해져서 걱정인 부분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나는 천성적인 외향형 체질이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망설인다. 사실 학부모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을 만날 곳도 마땅치 않기도 하다.
이곳에서 쭉 체류하는 분들은 이미 여러 번 나와 같은 복귀자들과의 이별을 경험했기에 더 관계에 큰 열정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국으로 복귀하는 친구들과 자꾸 이별을 반복하게 되어 마음을 닫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 살면서도 이사를 가거나 상위 학교 진학으로 헤어지거나 하는 등 이별은 겪을 수 있으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최대한 생각하는 중이다. 요즘같이 IT로 연결되고 하루 만에 해외를 오가는 글로벌 시대에 그 정도 이별이 대수냐 생각해 주는 분들과 뜻이 맞으면 또 그런대로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해외 생활의 재밌던 점을 풀고 싶었는데 재미없는 한풀이만 떠오르는 1년 차 시점이다. 첫 번째 성적표를 받아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데다가, 방학으로 아이들에게 매여 있다 보니 더욱 그런 듯하다. 방학이라 자꾸 다운되고 있는데 이런 고민과 어려움의 바이브에서 벗어나 또 재밌는 일들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