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태어나던 해에 새로 들였던 소파를 버렸다. 결혼하고 처음 가구매장에 함께 간 우리 부부는, 이제와 생각하니 뭔가 미심쩍으나, 그 당시는 좋은 가격에 잘 샀다며 서로를 부추기며 구입했던 소파였다.
소파는 내가 둘째 녀석을 품에 안고 젖 먹일 때 앉는 안락의자의 역할부터 시작했다. 그 뒤로는 기고 서고 걷고 심지어 날뛰던 두 아이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함께 또는 따로 텔레비전을 볼 때 앉는 폭신한 의자이거나 바닥에서 앉을 때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등받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사람이나 소파나 세월은 어찌할 수 없는 법. 아이들이 손톱으로 벅벅 긁어 겉가죽은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 어린이들이 어제까지도 신나게 트램펄린처럼 방방 뛰는 바람에 소파바닥은 마룻바닥과 뽀뽀라도 할 기세였다. 게다가 소파 관리 주체인 나는 가끔 쌓이는 먼지만 쓱쓱 털어줄 뿐 소파 틈새에 과자 봉지나 사탕 포장지가 움푹 끼여도 못 본 척, 가죽이 벗겨져도 못 본 척 방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소파는 버려졌다. 소파가 빠져나가고 난 빈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함께한 세월만큼 그랬다. 일요일 오후 엄마와 아빠가 끙끙거리며 소파를 내놓을 때도 게임 하느라 신경도 안 쓰던 큰아이는, 안방 침대에서 한참 울었다며 아빠 손에 이끌려 제 침대로 왔다. 그날 저녁 거실에서 숙제를 하다가 텅 빈 공간이 주는 허전함에 슬퍼졌던 걸까. 눈가가 빨개진 아이 뒤에 선 남편 눈빛에도 소파가 사라진 아쉬움과 그것을 과감히 버린 나에 대한 서운함이 어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는 소파를 밖에 내놓기 전 현관에 잠시 눕혀뒀을 때 소파 위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아빠가 밖에 내놓으려 하자 막아서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아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치른 이별 의식이었을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다 버린 소파를 다시 갖고 와 계속 쓰기로 했다, 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헌 소파는 수거해 갈 것이고 그 자리를 새 소파가 채울 것이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것은 아마 소파 그 자체보다 거기 깃들어 있는, 우리 가족과 온몸을 부비며 함께 만든 익숙한 기억 때문이 아닐런지.
그럼에도 큰 아이의 눈물 앞에 나는 어찌할 바를, 무슨 말은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저 익숙함과 이별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은 늘 우리에게 익숙함과 이별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에도 수없이 이별했고 오늘은 소파지만 내일이면 더 많은 물건들 또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이별들과 마주하게 되겠지. 익숙함과의 이별은 아무리 쌓여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 새 소파가 와서 빈 공간을 채우면 이별의 아쉬움도 점차 희미해지고 다시 익숙함이 자리 잡을 것이다. 훗날 어쩌면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 집 거실에 있던 그 시커먼 소파 기억하지? 우리가 방방 뛰기에는 그 소파만 한 게 없었잖아." 하고. 혹시나 소파가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몸은 참 힘들었어도 소파로서 꽤 괜찮은 삶이었다.'여겨주지 않을까.
신청한 폐가구 수거일을 기다리며 아파트 1층 현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소파를 오며 가며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나도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동안 고마웠다.'(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