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현재
"나는 식이장애를 6년 넘게 겪었고, 아직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다."
나의 식이장애는 2016년에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고 휴학을 했다. 남들이 한 번쯤 휴학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하는 3학년이 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 했다. 그렇다고 같은 전공 선후배, 동기들이 되고 싶어하는 공무원이나 금융업 종사자는 내게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휴학을 함으로써 진로 결정에서 도망쳤다. 휴학을 하고서도 뭘 해야할지 몰랐다. 그때 친언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해줬고, 왠지 그 길을 걸으면 어떠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6개월간 베이커리, 뷔페 주방 알바를 해서 여행자금을 모았고, 9월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다.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나중에 그때를 돌아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가령 나는 인간관계에 능하고 관심이 많고, 늘 사랑을 찾아 헤맨다는 것들. 그리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는 것. 그 이유들 중 많은 부분을 지금은 안다. 그러나 그때는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몰랐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에 더 불안해져서 음식에게 위로 받았다. 나는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밀가루, 고기, 유지방 종류의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했다. 여행하는 3개월 동안 사람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성에 사랑을 갈구하고,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었고,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10kg 이상이 쪄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쪘는지 모르겠다. 62kg을 본 후 충격을 받아 그 후로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에 가기 전 나는 선천적 마른 몸이었다. 위장 기능이 좋지 않아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탓에 살이 잘 찌지 않았다. 그래서 10kg 이상 찐 몸도 사실 그렇게 뚱뚱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모강박이 있었고 다시 말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살을 빼야할지 몰랐고 그저 살 찐 내 몸을 혐오했다. 그런 나를 본 엄마는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한의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한의원에서 소위 ‘식욕억제제’라 불리는 한약을 먹었다. 한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그 약이 어떻게 작용해서 살이 빠지게 되는건지 알려주셨는데, 그때의 나는 그런 설명을 들어도 알지 못 했다. 그 약이 얼마나 위험한 약인지를. 모든 약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식욕억제제는 신경계에 관여하여 교감신경을 항진시켜 입맛이 없게 만들어 살이 빠지게 만든다. 교감신경의 항진은 운동을 격하게 했을 때와 같이 몸이 흥분되는 상태를 말한다. 운동을 격하게 할 때 숨이 가빠지면 식욕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식욕억제제는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교감신경이 항진된다. 그렇게 뇌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신경계를 교란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하다. 그리고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급부로 많이 갈수록 -급부로 많이 간다. 그러니까 약을 먹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약을 끊는 순간 식욕이 미친듯이 올라온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동도 병행하고 건강한 식단을 병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고, 약의 효과가 끝나갈 때쯤 복학을 하여 정신없이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체중이 5kg정도 빠진 상태로 몸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서 운동을 하던 것이 운동강박으로 이어졌고, 식단을 하던 것도 강박이 되어 음식과의 삐뚤어진 관계가 시작됐다. 삐뚤어진 관계란 것은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지나치게 구분하고, 나쁘다고 생각한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거나 먹은 것을 상쇄하기 위해 강한 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나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은 오히려 그 음식들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가끔 나쁘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먹는 순간 고삐가 풀려 마구 먹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그런 상태였다. 음식을 제한해서 먹고, 가끔 제한했던 음식을 마구 먹는 그런 상태.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휴학했을 때와 같이 도망쳤다. 대학원으로. 친구들은 이미 취업을 했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고시 준비를 하는데 나는 그때도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도망쳤다. 아직 잘하진 않지만 잘할 가능성이 있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타과 전공으로. 타과 전공의 대학원 생활은 불안과 두려움 천지였다. 타과생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눈치를 봤고, 배워본 적 없는 것을 배우는 과정은 험난했다. 그러다보니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생활이 잦아졌고, 먹은 것을 운동으로 복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나는 토하기를 선택했다. 사실 그 선택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보다 시간이 덜 들고 힘들 덜 들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폭식과 먹토는 거식을 불러왔다. 엄청나게 먹고 토하고 나면 음식을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식욕이 올라오면 무서웠다. 또 겉잡을 수 없이 먹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참고 참다가 저녁 쯤 또 마구잡이로 먹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토했다. 그때의 나는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마주하기 힘들어서 먹을 걸로 푼 것이다. 그런데 정도가 심해지니 삶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음식 생각 말고는 하루종일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 폭식하고 토해내는 것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앗아갔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도 끝이 났다. 논문을 쓰지 못해 수료상태로. 그래서 이듬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논문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식이장애를 겪는 매일은 위태로웠다. 변비가 극심해서 복부 통증에 시달리고, 생리도 6개월 넘게 하지 않고 자주 어지러운 등 몸이 정말 좋지 않았고, 에너지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면 에너지가 동나 논문을 쓸 수 없었다. 간신히 아르바이트만 꾸역꾸역하던 중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 손님이었던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 끼를 잘 챙겨먹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이 좋으면서도 날 두렵게 했다. 남자친구가 맛있는 요리를 잔뜩 해주면 나는 그것을 먹성 좋게 먹고 몰래 다 토해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지쳐갔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과 맛있게 먹고 내 삶을 집중해서 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여러방면으로 내게 도움이 될 책도 찾아 읽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서 봤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몇 권의 책을, 몇 명의 유튜버를 추천한다. 책 <감정식사>, 책<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책<나는 죽는 것보다 살 찌는 게 더 무서웠다>, 책<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 유튜버<건강한 서룩>, 유튜버<치도 CHEEDO>, 유튜버<HelloEveryBody 헬로애브리바디>. 모든 영상이 내게 도움이 되었고, 유튜버<상처입은 상담사_엘로이의 심리상담>의 한 영상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사람에 따라 강한 어조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역효과가 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충격요법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 분이 영상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구 먹고 토해내는 행동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맞다. 내 삶의 태도는 늘 그랬다. 회피하고 마주보지 않고, 책임지는 삶을 두려워했다. 그런 태도가 식이문제도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 말을 듣고 책임지는 연습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큰 문제였던 식이문제에 먼저 적용했다. 폭식을 책임진다는 것은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이다. 먹은 것을 책임지는 것. 내가 몸에 넣었으니 억지로 뱉어내지 않는 것. 처음에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살이 찔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조금씩 책임지면서 점차 책임지는 빈도를 높였다. 그때 내가 머릿속에 되뇌였던 말은 “내가 먹은 음식을 소화시킴으로써 내 행동에 책임져야해. 그래야 나아질 수 있어.”였다. 이때 식사일지도 함께 쓰며 나아지는 과정을 가시화 했다. 식이장애를 겪는 하루하루는 참으로 길게 느껴졌기 때문에 어제를, 그제를 잊기 쉽다. 그래서 지금도 좋진 않더라도 전에 비하면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기 어렵다. 그러나 식사일지를 쓰면 어제의 나, 그제의 나를 들춰보며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나빠질 때도 간혹 있고, 어떨 때 나빠지는지 인지할 수 있다. 그것은 내게 큰 동력이 되었다. 먹은 것을 책임지는 삶을 살다보니 건강하게 챙겨먹으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소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쁘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다보면 먹고싶은 것을 참게 돼서 또 다시 폭식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튜버<HelloEveryBody>의 영상에 나온 방법을 시도해봤다. 그 방법은 일단 건강보다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것이었다. 식단을 조절 하던 것이 폭식증과 거식증, 먹토로 넘어오는 데에 일조를 한 것은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처음에 섰던 그 기로에 다시 한 번 서게 됐다. 잘못된 길로 한 번 가봤으니까 이번에는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로 욕구에 충실했다. 그리고 이전에 식사일지를 쓰며 나의 몸 상태를 자각할 수 있게 돼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도 폭식까지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건강하게 식사만 챙겨먹을 때보단 살이 좀 쪘지만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했다. 욕구를 잘 풀어주고, 내 몸과 내가 마주한 상황을 정확하게 볼 수 있으면 폭식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좋아져서 지금은 정말 많이 건강해졌다. 지금의 나는 생리도 정상화 됐고, 세 끼를 건강하게 잘 챙겨먹어서 에너지가 넘치고, 아침을 챙겨먹은 이후로는 변비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고, 일정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 카페인과 술의 조절을 통해 잠을 잘 자서 질이 높은 삶을 누리고 있다. 잘 챙겨먹고 힘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이, 그리고 더 이상의 음식의 노예로 살지 않는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 여전히 힘이 들 때 달달한게 당기고, 술이 당기기도 한다. 그럴 때 초콜렛 하나를 입에 넣으며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 힘들지?”, “힘든 것을 덜 힘들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그 방법을 시도해보자.”
사회적으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져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보고 들을 때가 많다. 바디프로필 부작용, 식이장애, 폭식증, 거식증, 먹토에 관한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본인도 나아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각심과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나의 경험을 적어내려가는 이유이다. 나는 말하고 또 말할 것이다. 식이장애 뿐만 아니라 내가 소수자라고 느껴지는 것들, 내 생각과 가치관들. 그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가닿을 때 어떤 공감대가 형성돼서 누군가를 살게 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면서. 물론 나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다양한 사람이 생긴 모습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