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를 불러일으킨 외모강박
나의 식이장애는 왜 생긴걸까? 왜 살이 쪘을 때 살이 찐 것으로 끝나지 않고 폭식증, 거식증, 먹토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외모강박인 것 같다. 어떠한 이유로 살이 쪘을 때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OOkg은 넘으면 안된다든지, 내 몸은 어떠해야한다든지 하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식이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몸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나는 늘 같은 몸일 수 없다. 그건 경험으로 안다.
그런데 왜 그런 외모강박을 가지게 되었을까? 언제 시작되었을까? 궁금해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일 때 어느 명절날 친척들이 한데 모였는데 어른들이 아이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나의 친언니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정말 잘해서, 친척 어른들이 언니에게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다가 나를 보고는 “OO이는 키크고 늘씬하니까 모델을 하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어려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런 몸을 예쁘다고 하는구나. 나는 이 몸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겠구나.” 본능적으로 알지 않았을까? 외모칭찬도 독이 된다. 외모칭찬도 외모평가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듯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데, 그때의 나는 어려서 그 말을 걸러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중학생 때는 용돈을 받는 족족 화장품을 사서 나를 꾸몄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절대 나가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에도 공부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선크림, 틴트, 고데기는 절대 포기하지 못 했다. 그래서 아침에 잠을 덜 자고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일찍 일어나지 못 한 날엔 통학버스를 놓쳐서 부모님이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런 나는 성인이 되어 외모평가에 더욱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 어차피 똑같이 외모평가인데도 외모칭찬을 들으면 기분 좋아했고, 외모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했을 땐 속으로 역겨운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내 외모강박은 점점 심화되었다. 나는 키가 168cm인데도 50kg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다양한 경험에 쓸 수 있는 돈을 치장하는 데에 온통 쏟아부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위장 탓에 살이 쉽게 찌지 않아서 20대 초반까지는 별 문제없이 남들의 기준에 어느정도 맞는 외모를 가지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취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도망치듯 떠난 해외여행에서 나는 10kg이 쪘다. 한국을 벗어나서 나는 자유로웠다. 우리나라와 다른 외적 기준을 가진 유럽에서 나는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먹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불안감 때문에 음식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다. 늘 남들 눈에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불안감, 그런데 내 삶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너무 뚱뚱했다. 내 몸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다. 아마 그때는 경험하지 못 해서 몰랐을 것이다. 사지가 멀쩡한 것이, 걷고 싶을 때 걷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이 그냥 내 몸이 건강하게 작동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너무 당연해서 알지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몸이 고장나봤으니, 소화가 안 되고, 변을 못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몸이 피곤하고, 계속해서 두통에 시달리고, 피부트러블이 자주 생기고, 생리가 끊기면서 알게됐다.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하다. 건강한 몸은 삶의 근간이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함께 아프게 된다. 그런데도 외모강박은 참 강력하고 무섭다. 처음에 몸이 신호를 보낼 때 무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파도 아등바등 아침 공복 운동을 하게하고, 16-18시간의 간헐적 단식을 매일 하게 하고, 김밥 한 줄 정도만 나에게 허락하게 하고, 그 이상을 먹었을땐 에라모르겠다 토할 심산으로 엄청난 양을 밀어넣고 토하게 만든다. 그런데 남의 입맛에 맞는 외모를 가진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바랐던 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길 바란게 아닐까. 하지만 타인은 내 모든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는다. 아픈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해서도 안되고, 특정한 내 모습만을 사랑해서도 안된다. 오롯이 나를 사랑해야한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이런거 아닐까? “꽃은 왜 저렇게 생겼어?”, “도대체 나무는 왜 저렇게 생긴거야?” 이 문장들이 참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그냥 그렇게 태어났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에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그냥 그건 그거다. 그 자체로 가치있고 유일무이한 존재다.
이런 생각들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부디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았으면 좋겠다. 서로 말해주고 또 말해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에 힘쓰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