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27. 2023

“마음아 네가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날 미워하나!”

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하는 29살

#4월26일 수요일 (아르바이트 6주 차/ 108배 25일째)

남자친구와 새벽 1시 30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잤는데도 습관처럼 새벽 6시 30분에 기상했다. 나는 남자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돌아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오늘의 기도문으로 외웠다.


먼저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나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갖지 못하면 병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 증상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생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지며 병이 났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주셨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이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시기였음에도 엄마가 무리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사준 몇 번의 경험 후 나는 더 이상 부모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후로는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욕구나 욕망이 사라져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내 용돈 범위 내 혹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족하기도 했지만 내 욕구나 욕망은 늘 내가 가진 것보다 컸기 때문에 점점 참게 됐다. 지금도 어릴 때와 똑같은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은 내 안에 아직도 욕구나 욕망이 아주 많다는 것이고, 나는 그 욕구와 욕망을 흘려보내거나 조절할 줄 모르는 어른으로 컸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나는 타인이 나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거나 말하면 이렇게 반응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속상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나는 서운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런데 나도 내 마음은 어찌할 수 없고, 행동만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108배를 하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뿐입니다.‘와 ‘모두 각자의 선택입니다.‘를 외웠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되는 것이다. 될 것은 될 것이고, 되지 않을 것은 되지 않을 것이다. 변할 것은 변할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는 오늘도 절을 한다.


(좌) 아침 / (우) 점심

108배를 하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책상에 앉아 일을 했다. 마음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지 요새 많이 피곤하다. 그래서 에너지가 있을 때 일을 해놔야겠다고 생각해서 먼저 일을 했고, 다행히 에너지가 남아서 글도 썼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글을 좀 더 쓰다가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낮잠을 잤다. 자다가 알람이 울려서 일어났고,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저녁 도시락

오늘은 매주 월, 수 마감을 함께 하는 아르바이트생 B와 함께 일했다. (자주 등장하는 탓에 앞으로 B로 지칭하기로 했다.) B는 오늘 대학교 중간고사를 끝내고 왔는데, 이번 시험을 망쳤다며 끝났지만 찝찝한 마음이라고 했다. 나도 대학생 시절 자주 느꼈던 마음이라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찝찝함 때문에 시험이 끝났는데도 즐기지 못하고,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는데, 지금은 지나간 것을 후회하기보다 일단 끝났으니 끝났다는 사실을 즐기고, 다시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든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여유로운 시각을 가지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늘 전전긍긍한다. 전전긍긍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제는 비가 오고, 오늘은 날이 추운 탓에 손님이 별로 없어 한가로웠다. 덕분에 마감 업무도 수월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저번주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늘 함께 열심히 일하고, 나서서 해주는 소중한 동료에 대한 감사함을 당연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열심히 하니까 내가 덜 하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불만이 생기지 않으니 일하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체력도 많이 올라와서 가뿐한 걸음으로 퇴근하니, 참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 편의점에서 맥주 4캔에 11,000원을 사서 한 캔을 마시며 무사히 끝난 오늘을 자축했다.


오늘 하루 무탈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는 ‘나’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