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합격에 장학금이라니...
아이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학비, 학원비로 돈 많이 든다고 엄청 구박했는데 이렇게 단번에 갚아주는구나, 고마웠다.
퇴근 길에는 지난 4년 반, 학군지에 이사 와서 고생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동안 힘들었던 나날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3년 전 이맘 때, 아이의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외고 면접날 아침, 아이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한방울 눈물을 흘렸다. 시험 보기도 전에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입시결과가 발표나기도 전에 떨어질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아이가 외고에 지원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입시 트렌드에 어두웠던 나는 아직도 우리 때처럼 외고-스카이가 최고인줄 알고 아이에게 외고를 권했던 것이다.
불합격을 확인한 아이의 낙담은,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쟁률 2:1도 안되는, 생애 최초의 입시에서 떨어지다니...!
그렇게 우울하게 보내던 연초, 하루는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아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열어보니 사진 두 장.
중학교 졸업장이었다. 비록 코로나 상황이긴 했지만, 아이의 낙담과 나의 무관심이 더해져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은 그렇게 축하 꽃다발 하나 없이 사진 한 장 못남기고, 쓸쓸하게 끝나고 말았다.
외고에 떨어져 배정이 뒤늦게 된 덕분에, 아이는 학군지 내에서 가장 비선호되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가 아닌 빌라, 주택가에 위치하여 분위기도, 입결도, 영 별로인 학교였다.
코로나 상황에서 입학식도 생략했기 때문에 아이 고등학교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 근처에 처음 가보고 깜짝 놀랐는데, 횡단보도 하나를 경계로 이 곳 학군지 아파트 단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유흥업소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ㅇㅇ텔, ㅇㅇ룸, ㅇㅇ방...
하...매일 이런 곳을 지나 등하교를 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우여곡절 끝에 명문대 합격장을 받음으로써 아이는 3년 전 외고 불합격의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낙담과 좌절에 빠져있던 아이에게 다시 희망과 기회를 준 것이 부모로서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다. 뭘 어떻게 해줬는지, 그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