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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Feb 05. 2024

공돈이라고 30만원을 날릴 뻔했다

큰아이는 중학교 때 학군지로 전학을 왔다. 나름 욕심이 있어 용기를 내어 학군지로 옮겨왔으나 아이도, 나도, 속으로는 무지 떨고 있었다.


전학 수속을 마친 첫날, 담당 선생님과의 일대일 면담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보자마자 대뜸 “너 공부 잘하니?”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걸 왜 묻냐하면, 여기 애들이 진짜 공부 열심히 하고, 또 잘하거든..시험에서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이 잘 안나올 수 있어. 그래도 실망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려고 하신 말씀이었으나, 아이의 얼어붙은 표정을 보니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온 것 같었다.​

이어 선생님은 “너 좋아하는 건 뭐니?” 물으셨다. 아이가 축구랑 기타 치는 거 좋아한다고 대답하니 “좋아하는 게 있으니 다행이다. 바쁜 학업 중에도 너만의 즐거움이 있어야지.” 말씀하셨다.


아이는 점점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생각해. 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나는 조그만 손해도 절대 안보겠다~ 생각하면 관계가 좋을 수 없지.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한거야.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게돼. 그런데 여기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겪을 어려움들을 대신해서 미리 다 제거해주려고 하지. 그게 과연 너네들 인생에 도움이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말씀을 마무리하며 교복 관련 안내를 해주셨다. “개학 전까지 판매처에서 구매하시면 됩니다. 물려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처음 전학왔고 아직 2년은 더 입혀야 하니 물려받는 것 권하지 않는 겁니다. 새걸로 구매하시는 편이 나으실 거예요.“


덩달아 바짝 긴장했던 나는 그 길로 바로 교복 판매처에 가서 40여만원어치를 샀다. (그 땐 <당근>도 없어 물려받는 건 알아보지도 않았다.) 기본 세트에 여분으로 바지와 셔츠를 한벌씩 더 구매했다. 전학와서 바짝 긴장한 아이에게, 교복이라도 멀끔하게 입혀야 자신감 있게 지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산 교복은 두어번 입었을까? 아이는 주구장창 체육복만 입었고, 새것과 다름없는 그 교복세트는 졸업할 즈음 중고떨이로 처분해야 했다.




6년 전 큰아이가 전학한 바로 그 중학교에 둘째가 입학하게 되었다. 그보다 경쟁이 덜한 학교로 배정되길 내심 바랬으나, 바로 집 코앞 학교를 피해가기는 역시 어려웠다.


학교에서 교복 구매 안내문이 왔다. 다행히도 중학교 입학생들에게 정부 지원금(30만원)이 나와서 내 돈 안쓰고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자켓, 바지, 조끼, 셔츠, 넥타이…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아이템만 해도 20만원이 훌쩍 넘었다. 거기에 평상시 입는 생활복, 후디까지 더하면 정부 지원금을 다 쓰고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문득 큰아이 때 새 교복을 사들이고서 후회한 일이 떠올랐다.


(나) 우리, 교복 중고로 사면 어떨까?

(아이) 엄마…교복을 어떻게 중고로 입어요?!

(남편) 그래도 처음 중학생 되는데 새 옷을 사주는 게 맞지. 키도 큰데 맞는 옷이 중고로 있을까?

(나) 그래? 그럼 정부 지원금도 있고 하니, 그냥 새거 사줄까? 학군지 센 학교에 들어가는데, 교복이라도 멀끔하게 입어야 무시당하지 않겠지?


중고를 단념하고, 새 옷을 사기로 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마지막으로 ‘당근’을 한번 검색해보았는데….지난 코로나 온라인 재택 수업 기간 동안 구매만 해놓고 한번도 미착용한 교복 세트가 단돈 5만원에 판매 중인 것이다! 치수는 아이 원래 치수보다 한 치수 큰 것이었다.


아, 새 교복은 오늘까지 주문해야 입학식 전에 받을 수 있는데…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남이 입던거여도, 좀 헐렁해도 한두번 입고 말 교복, 그냥 중고로 사고 20만원 아끼자! 정부지원금이라고 해도 돈은 돈이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5만원 주고 중고 교복 세트를 사왔다. 그런데 가져와보니 상태가 새것과 다름없는것이다. 오, 개이득!!


(나) 이 옷 어때? 완전 새거지?

(아이) 완전! 진짜 괜찮은데?

(나) 와우, 20만원 벌었네.




남들은 내 옷이 새건지 헌건지 관심이 없다. 5만원 짜리인지, 25만원짜리인지도 관심이 없다.


괜시리 위축된 마음에, 처음이라는 이유로, 또는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쓰는 불안비용, 허세비용(?)만 아껴도 20만원쯤은 그냥 벌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당근>이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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