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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간지 May 12. 2022

 『파리의 우울』  샤를 보들레르


취해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민음사​


 드라마 미생 속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 장그래. 독백 장면을 보며 미생으로서 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많이 공감이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인 샤를 보들레르.  그는 기존의 틀에 박힌 정형시에서 벗어나 산문시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하였다. 산문 형식으로 시를 쓰면서도, 리듬감이나 시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보들레르의 산문시들을 모아 놓은 “파리의 우울”에서는 이러한 보들레르 시들의 문학적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보들레르에게 산문시는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의 수단이었다.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의 증가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산업화의 이면에는 도시 빈민 문제,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버린 인간 존엄성의 상실 그리고 인간 소외와 같은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사회 문제를 시로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사명이라 생각한 보들레르는 형식이 정해져 있는 정형시를 거부함으로써 기존 체제에 대한 그의 굳은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상징주의 시인인 보들레르는 세상 모든 사물들을 무언가를 상징하는 기호로 보았다. 기호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해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기호들은 시인에 의해 해석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보들레르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호들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일이 바로 시인과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파리의 우울”에서 보들레르는  오솔길, 놀이터, 공원, 공터, 빈 방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그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서글프고 우울한 파리에 대한 보들레르의 묘사와 은밀하고 단조로운 분위기 그리고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


“파리의 우울”에 나타난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파리의 우울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대중에 대한 애정 어린 연민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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