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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간지 May 22. 2022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우리 삶에서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

http://naver.me/x3b7eYqa


​오랜만에 글을 썼다. 그동안 좀 바빠서 글을 안 쓴지 꽤 됐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속 한 구석에 응어리 처럼 남아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글을 하나 완성하니까 좀 속이 뻥 뚫린 느낌이다. 오늘은 내가 가장 최근 읽은 책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라는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들으면 전하고, 말하면 듣고, 읽으면 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구비되어야 할 활동들이다.

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인생이란 길 위에서 ‘길’ 찾기다.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 한다. 앎이 바로 지도다. 앎이 없으면 정처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깜깜한 밤에 낯선 곳에 툭! 던져진 것과 같은 상태다. 그때 온 몸은 공포에 휩싸이고 만다. 위험한 곳이라서 두려운 게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렇듯이, 무지는 그 자체로 고통이요 괴로움이다. 그렇게 해마다 마침내 길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 온 존재는 환희로 넘쳐난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마침내 삶의 길을 찾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가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그 희열은 평온함으로, 평온함은 오롯한 집중력으로 변주된다. 이제 다시는 길을 잃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 준칙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바꾸면 바로 ‘읽기와 쓰기’가 된다. 천지의 운행을 주시하는 것이 ‘읽기’라면 그 사이에서 삶의 비전을 여는 것이 곧 ‘쓰기’다. 물론 그 둘은 나뉠 수 없다. 하늘을 보는 것과 땅을 살피는 것이 동시적이어야 하듯,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으로 이뤄줘야 한다. 요컨대, 산다는 것은 천지인의 삼중주를 ‘아는’ 것이고, 그 앎의 구체적 행위는 바로 읽기와 쓰기다.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북드라망, p64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이 책을 읽고난 후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더 확실해 진 것 같다. 고전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미숙 작가는 공자, 박지원, 정약용 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과 지혜를 통해 우리 삶에서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설명해 준다.


​​글쓰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꺼려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글쓰기와 별로 친하지 않았고, 글쓰기는 작가들만 하는 일인줄 알았다.


우리는 왜 글쓰기와 친하지 않을까? 그건 아마 어릴 때부터 글을 쓸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오면서 지식을 머리에 넣고 시험에서는 객관식 답만 찾으면 되는 학습에 훈령이 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글쓰기는 참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나도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처음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그것도 글쓰기 강의가 필수 교양이서 들었던 거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인생에서 글을 쓰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비싼 돈 내고 대학 나와봤자 취업도 안되는 세상에서 대학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대학에서 내주는 시험과 각종 과제, 레포트들 덕분에 그나마 조금이나마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막상 글을 쓰려 하면 막막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항상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스펙 쌓기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등의 갖가지 이유를 들어 글쓰기를 미루어 왔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야 시간적 여유가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요즘에는 다시 바빠져서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처음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며 그들과 같이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 넓고 똑똑한 사람들은 많고, 당연히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의 글과 내 가 쓴 글을 비교하며 나에게 글 쓰기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능력에 대한 한계를 깨닫게 되니 글 쓰는 게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글을 써야 할는 목적과 이유를 잃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식고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멀어지게 되었다.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그들처럼 글을 잘 써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좋은 글을 읽는 게 좋았던 거고, 그런 글들을 보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글을 못 쓰는 사람도 있는 거고, 잘쓰는 사람들은 잘 쓰는 대로 못쓰는 사람들은 못 쓰는 대로 그냥 자신의 글을 쓰면 되는 거다. 글을 쓰는 행위의 목적이 반드시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함은 아니니까, 그냥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면 되는 거였다.


​ 그래서 그냥 부담없이 편하게 내 생각,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렇게 글을 쓰니까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그 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경험을 했고, 뭔가 정신적으로 치유를 받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글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또 글 한 편,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그리고 내 생각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직업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책이나 글을 읽으면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는다. 그 글을 완성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고뇌를 거쳤을 작가를 생각하면, 고작 몇 천원에 그들의 고뇌와 고민의 결과물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이 점점 글을 안 읽는 다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읽기와 쓰기가 필요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영상 매체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컨텐츠다. 그 컨텐츠를 생각해내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읽는 행위를 통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서사를 짜고 대본을 만드는 모든 일에 글쓰기라는 행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로 나뉠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전자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또 다른 계급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이다.


​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재밌고 즐거운 행위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 너무 글쓰기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잘 쓸 필요도 없다. 원래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루를 마무리 하는 일기를 쓴다거나 아니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도 괜찮다. 필사도 좋은 방법이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것 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이니까. 그렇게 처음의 작은 시작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 나중에는 생각지 못 한 큰 결과물로 돌아올 수 도 있고,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럼 다들 글쓰기를 시도해보길 바라며, 오늘의 긴 글은 이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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