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연오가 태어날 때 아빠는 없었다. 자라며 그 사실을 알았다.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자랐지만 연오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를 갖고 싶었다.
“아빠는 안 와?”
유치원 학예회 때도 물었지만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만 저었다. 그런데 그날 기적이 일어났다. 율동에 맞춰 날갯짓하면서 보니 엄마 옆에 남자가 앉아있었다. 율동이 끝나자마자 연오는 다른 아이들과 줄 맞춰 나가지 않고 무대에서 뛰어내려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아빠, 아빠.”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어정쩡하게 바라보고 있는 연오를 남자가 하늘로 안아 올리며 말했다. “그래. 아빠란다. 근데 작은 아빠야.”
진짜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와 딸은 성이 같다. 그런데 작은 아빠 이름은 김민철. 성이 달랐다. 작은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와 연오랑 놀았다. 놀이동산에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었다. 하지만 연오는 친아빠를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다른 남자가 와서 연오를 안아주었다.
“아빠, 아빠예요?”
“아니, 할아버지란다.”
차에서 내리던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당장 내려놔. 손 떼!”
엄마는 남자에게 화를 내며 연오를 빼앗았다. 아무리 달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엄마를 본 할아버지가 뒤돌아서 갔다.
“저 할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야. 다시 저 사람을 보면 선생님에게 가서 보호해 달라고 그래. 그리고 당장 엄마에게 전화해.”
다음날 연오가 싫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유치원을 옮겼다. 그 뒤 무서운 할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 연오는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도 엄마는 ‘아빠는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만 했다. 연오는 ‘아빠를 찾으러 갑니다’라는 글을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출했다. 연오도 알았다. 무작정 헤매서는 아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하늘이 도와주기를 바라며 찾아다녔다. 사흘째 되는 날 경찰서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집에 온 엄마가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네 아빠다. 시인이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분이시다.”
스크랩해두었던 신문 기사도 보여주었다. 상상 속에서처럼 아빠는 잘생겼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외국에... 네가 더 크면 말해줄게.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네가 엄마를 이해해 주면 안 되겠니?”
울면서 부탁하는 엄마를 더 조를 수 없어 연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빠에게도 물어봤지만 같은 대답을 했다.
“더 큰다는 게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되묻는 연오에게 작은 아빠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아빠를 닮았다. 집요한 성격이나 똑똑한 머리나... 네가 대학을 마치면 알려주마.”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약속했다.”
작은 아빠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연오는 열심히 공부해 아빠가 다니던 학교 같은 과에 합격했다. 시도 써봤지만 아무리 애써도 아빠처럼 써지지 않았다.
“네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지만 시는 머리로 쓰는 게 아니야.” 연오의 시를 읽은 작은 아빠가 말했다.
“그럼 어디로 써요?”
“가슴으로.”
연오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 쓰기를 포기했지만 그럴수록 아빠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다.
졸업식에는 엄마와 작은 아빠 모두 참석했다. 연오는 작은 아빠에게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내일. 내 사무실로 와라.”
그렇게 말하는 작은 아빠를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다음날 찾아간 연오에게 작은 아빠는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왜 자기 이름이 연오인지도 알았다. 엄마가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 그렇게 지은 것이다.
“행방불명됐단 말이에요?”
“그래. 오랫동안 아빠를 기다려 온 네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 정말 미안하다.”
엄마와 작은 아빠도 그동안 몇 번이나 일본에 갔지만 찾지 못했다.
작은 아빠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고민을 끝낸 연오가 엄마를 찾아갔다.
“일본 대학원에 들어가 일본사를 연구하겠어요.”
연오가 왜 일본 대학원에 가려는지 엄마도 알았을 테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워둬서 다행이었다.
“약속해라. 매주 전화하겠다고. 아빠도 그렇게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너까지 그러면 엄마는 못 산다.”
연오는 약속했다.
“무엇인가 아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개입하지 말고 엄마에게 알려라. 네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사람들이 이 일에 개입돼 있다.”
유학을 허락받은 연오는 와세다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출국하기 전 연오는 인사를 드리러 작은 아빠를 찾아갔다.
작은 아빠가 일본 주소와 소개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빠가 일본에서 함께 지내던 분이다. 대학교수였지만 아빠를 잃고 화상까지 입어 지금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어쨌든 일본에서 네 아빠와 가장 친했던 분이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렴. 상처가 심하니 겉모습에 놀라지 말고. 막걸리를 좋아하신다. 선물로 몇 병 준비해 가라.”
연오는 주소와 소개장을 가방에 잘 갈무리했다. 학생이니 일단 공부에 전념하라는 당부를 끝으로 연오는 작은 아빠와 헤어졌다.
“작은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게요. 그리고 방학 때마다 돌아올 테니 보고 싶어도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연오는 작은 아빠를 꼭 끌어안았다가 뒤돌아서 나왔다. 작은 아빠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런 작은 아빠가 ‘나는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라며 늘 아빠를 칭찬했다. 엄마가 슬퍼할까 봐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리움이 깊어갔다. 아빠가 찾는다는 세오녀의 비단도 보고 싶었다. 역사를 전공한 연오는 세오녀의 비단이 얼마나 중요한 유물인지, 아빠가 왜 비단을 찾으려 그토록 애썼는지도 이해했다.
비행기가 뜨는가 싶었는데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한국과 일본은 정말 가까웠다. 공항을 나와 ‘이곳에 아빠가 계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일본 풍경이나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 속 젊은 아빠 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다음날 막걸리를 들고 신영지를 찾아갔다. 호텔에서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불탄 집을 보고 놀랐지만 작은 아빠에게 들은 말이 있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서연오라고 합니다.”
문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인사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악취가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 속에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가 서 있어 연오는 깜짝 놀랐다.
“누구야?”
“서연오라고 합니다. 서리하 시인의 딸입니다.”
서리하의 딸이라는 말을 들은 신영지가 쓰레기를 헤치며 연오에게 다가왔다.
“서리하 딸이라고? 자식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