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반컬티스트 Aug 27. 2018

시간,글,이야기를 담은 문화공간 '서담재'

스페이스클라우드 | 인천 원도심 중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이 글은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도시작가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것입니다. '도시작가'는 작가들의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로, 도시 곳곳의 로컬 공간들을 발견하고 방문하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tvN의 <미스터션샤인> 드라마 中 화면 캡처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tvN의 <미스터션샤인> 드라마에서 극 중 고애신이 한 대사다. <미스터 선샤인>은 1900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제국 시대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개항 이후 대한제국이 얼마나 급속도록 변화하고 있었는지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인천 개항장의 풍경, 출처=팟알 http://www.pot-r.com/index/bbs/board.php?bo_table=post&wr_id=68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인천 개항장이 있었다. 1883년 1월, 제물포항이 열리면서 누구에게는 '낭만의 시대'가, 다른 이에게는 '혼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개항장에는 새로운 문물이 쏟아졌고, 일본인과 중국인을 넘어 이제는 파란 눈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에 따라 각국 영사관이 지어지고, 근대식 은행과 교회·극장이 세워졌다. 모두 대한민국 최초였다. 근처에 있는 자유공원도 우리나라 최초로 설계된 '서구식 공원'이었다.


인천의 원도심인 중구에는 대한민국 개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모진 세월을 버티고 새로운 쓰임새를 얻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들은 공간 자체가 재미있을뿐더러, 지역성(locality)을 담고 있기에 스토리와 개성이 흘러넘친다.



그중 하나가 '서담재'다. 1935년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2015년 10월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쓰임새를 얻었다. 전시, 독서회, 인문학 강연, 음악회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적산(敵産)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살던 집을 가리킨다. 적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다른 문화공간보다 좀 더 매력적이다. 공간의 멋스러움과 문화활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담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바로 이 훌륭한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작은 방부터 전체 대관까지. 그리고 무려 숙박, 야외에서 BBQ까지 가능하다. 서담재 옆에 있는 130년 된 내동교회와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BBQ파티를 할 수 있다.


중견 작가 이상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서담재에서, 공간대여와 전체 대관을 통해서 공간을 맘껏 향유할 수 있다.


 서담재 ⓒ 어반컬티스트



첫 만남


서담재는 탄생 스토리부터 흥미롭다. 때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서담재를 운영하는 이애정 대표는 당시 "중년이 넘으면 원도심인 중구에 집을 마련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인천 아트플랫폼을 설계한 황순우 건축가가 "이런 멋진 공간은 당신이 운영해야 된다"라며 서담재 건축물을 소개해줬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인천의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힘써온 이 대표의 안목을 믿은 것이다.

 

서담재 ⓒ 어반컬티스트


원래 이 대표는 개인 주택으로 사용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이 주택의 역사성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우리 부부만 즐기기 아깝다. 공유하자"며 주택에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의 방향성을 틀었다.



글과 이야기를 담는 집


이 대표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인천의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일했던 경험을 한껏 살려 서담재를 운영하고 있다. 서담재의 이름도 이 대표와 책과의 인연으로 탄생했다. 글 서자에 이야기 담, 집 재자를 써서 '글과 이야기를 담는 집'이 된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인문학 강연과 문화 모임이 서담재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책이 매개체인 만큼 곳곳에는 책이 놓여있다. 인천에 대한 책도 있고, 인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이 있다. 이 대표가 큐레이션 한 책들의 리스트를 엿볼 수 있다.



책을 매개로 한 활동 외에도 서담재는 전시회, 음악회, 캘리그래피 클래스 등으로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서담재 제공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면서 서담재는 시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를 느낄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서담재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중이었다. 누군가 서담재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 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이내 같이 온 사람들에게 서담재를 자랑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담재 주인도 아니면서 자발적으로 신이 나서 설명하고 있는 그분의 모습에서 서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꼈다. 마케팅으로 보자면, 서담재는 충성고객(자발적으로 경험을 공유하고, 브랜드를 홍보해주는)을 많이 확보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서담재에 놀러 온 사람들과 이 대표 간의 이야기꽃이 피었다. 서담재의 뜻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게 됐다.


서담재 ⓒ 어반컬티스트


서담재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상업시설 카페가 아니라 메뉴가 많지는 않지만, 테이블에 앉자 담소를 나누며 휴식하기엔 충분하다. 이 작은 카페가 있기에 커피와 주스를 핑계 삼아 서담재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어 좋다.



서담재를 시민에게 내주다


운영 초반에 이 대표는 남편과 함께 서담재에서 거주했다. 일부 공간만 갤러리, 문화공간으로 쓰고 나머지는 주거공간이었다. 그러다, 문화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며 서담재 전체를 시민에게 내주고, 다른 곳으로 집을 이사했다. 덕분에 시민들은 더 넓어진 서담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작은 방 공간대여와 숙박도 가능해졌다.


서담재 ⓒ 어반컬티스트


01 높은 곳에 위치한 서담재


서담재는 인천 원도심에서도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야외 테라스에서는 시가지가 내려다보일 정도다. 백 년 전 외국인 거리로 불렸던 중구 송학로에는 적산가옥이 많지만 서담재는 이들보다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는 서담재가 다른 적산가옥보다 좀 더 특별하다는 의미가 된다.



과거 tvN <알쓸신잡2>에서 건축가 유현준은 높이와 권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언급해 화제를 낳은 적이 있다. 높이 쌓을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더 들기 때문에, 그것이 곧 사람의 권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다 안다. 남들을 내려다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높이에 있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일제 강점기에 이 곳(과거 조선전업 관사)에 살았던 누군가의 사회적 위치도 유추해볼 수 있다.



02 시간의 흔적을 담다


이 건축물의 외형 구조는 그대로 보존됐다. 독특한 내부 구조는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천장을 뜯어내고 트러스 목구조를 드러냈다. 메인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 벽면에는 붉은색의 벽돌과 회색의 콘크리트가 뒤섞여 있다. 이전에 있던 창고를 헌 흔적이다. 건축물이 서담재로 리모델링 되기 전, 이곳은 누군가의 개인주택으로 사용됐었고  창고가 있었다. 그러다 서담재로 새단장하면서 창고가 있던 곳은 하늘을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는 아담한 정원이 됐다.


창고가 있었던 흔적 ⓒ 어반컬티스트


야외 테라스에는 두 개의 석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과거 일본 사람이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라 한다. 그 옆에는 오랜 세월 이 곳을 지켰을 법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석기둥과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켰을 법한 나무 ⓒ 어반컬티스트


03 호기심을 자아내는 구조


서담재를 둘러보면 '아기자기하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못 보던 작은 공간들이 어디선가 나온다. 좁디좁은 복도를 지나가면 '아, 방금 지나왔던 공간이 여기와 연결되는구나'라며 공간 구조가 조금씩 머리에 들어온다. 하지만 한 번에 그려지진 않는다. 그래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 곳으로 가면 뭐가 나올까? 이 문을 열면 어디일까? 가는 길마다 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발걸음을 더욱 느리게 만든다.


서담재 내부 공간 ⓒ 어반컬티스트



04 공간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서담재를 천천히 자세히 둘러보면 그 너머에 공간을 소중히 다룬 손길이 보인다. 테이블과 창틀에 놓인 작은 소품들, 잘 가꿔진 식물들, 책들,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여러 포스터 등을 보면, 서담재와 문화에 대한 이 대표의 각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특히 인천 원도심의 문화 발전에 대한 뜨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대표 부부는 인천 토박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원도심에 터를 잡을 만큼 인천 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담재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인데다 상업적인 시설도 아니기에 운영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대표는 "서담재를 잘 가꿔 주민들이 쉽게 가까이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문화를 확산시키는 서담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주       소   인천 중구 송학로 25-15

전시관람   화~토요일 11:00~18:00

공간대여   메인홀 5만·세미나룸 2만/시간

공간예약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한남동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사운즈한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