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사회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지역사회 공공 돌봄 커뮤니티케어

by 낭만앨리


늙는다는 것이 곧 두려움이 되는 사회,
돌봄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는 과연 지속 가능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지역사회 공공 돌봄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새판 짜기를 읽고.



돌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됩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예고 없이 아버지의 투병이 시작되었고, 수술과 항암을 반복하는 시간을 가족으로서 함께 보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던 긴장된 시간, 항암 후 효과를 확인하기 전의 조마조마한 날들, 밤새 고열이나 통증에 대비하느라 잠 못 이루던 기억들. 그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간병하는 일은 단지 곁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삶의 우선순위를 통째로 재조정하게 만듭니다. 하루의 리듬은 한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고, ‘가족이니까 당연하지’라는 말은 책임감을 넘어서 점점 지쳐가게 만듭니다. 그 후 저는 돌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건 단순한 일상의 복귀가 아니라, 기억과 애도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새로운 형태의 시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고 ‘돌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겪었던 불편한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경험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천적 제안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두렵다.


이 책은 개인의 책임이나 가족의 헌신에만 기댄 돌봄 방식이 가진 한계를 짚습니다. 간병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들, 요양병원에 머물며 고립되는 노인들, 그리고 방치되는 아이들. 책은 이들이 겪는 현실을 통해 지금의 돌봄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8명의 저자들은 돌봄을 ‘감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돌봄 체계를 제시합니다.


지금의 돌봄은 병원이나 요양 시설 중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익숙한 집과 동네에서의 일상을 유지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의 저자들은 ‘집에서, 지역과 함께’ 돌봄을 가능하게 만들 구체적인 제안들과 사례를 소개합니다. 방문진료, 방문간호, 주거 개조, 생활지원 같은 인프라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돌봄에 있어서의 젠더 불균형입니다. 지금도 많은 경우, 돌봄은 여성에게 ‘무급 노동’의 형태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에서는 우리가 인간을 ‘자립하는 존재’로만 보는 관점을 넘어,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상호의존성’을 인정할 때 돌봄의 지속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책의 마지막은 열 가지 제안으로 마무리됩니다. 지방정부의 역할, 의료와 주거의 통합, 돌봄의 보편화 등 '돌봄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제안이죠.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늙고, 병들고, 작별하고 싶은가?



돌봄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일이 아닌, 모두가 한 번씩은 경험하게 되는 거죠. 돌봄이 고통과 희생이 아닌, 연결과 존엄의 언어로 다시 말해지길 바라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계엄 경계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한국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