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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맹이 Apr 21. 2021

이집트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고 웃었다

여행의 소중함

  요즘 '출근하기 싫어증' 증세가 유난히 심해지고 있다. 대체 이놈의 직장은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 것인가? 일요일 밤만 되면 출근하기 싫어증이 최고조에 달해 눈물이 날 지경인데... 이것 저것 생각하기도 질려서 도피처로 찾은 곳은 역시 가족의 품이었다. 3월 말 언제쯤 토요일에 눈뜨자마자 전화로 통보만 하고선 무작정 본가에 난입했다.


  나랑 똑같이 출근하기 싫어증에 걸린 동생과 비오는 토요일 저녁 바삭한 파전에 동동주를 거나하게 걸치고는 돌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잠들기엔 황금같은 토요일이 너무 아까웠다. 동생과 거실에서 인생노잼시기의 월급탕진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다 무심코 TV를 켰다. 밤 12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KBS에서 '투탕카멘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한 편 방영중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역사 다큐멘터리는 가볍게 스킵하고 채널을 돌렸겠지만 작년 1월 다녀온 이집트에 대한 내용이어서 나도 모르게 채널 고정을 해버렸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코로나가 뭔지도 모를 시절 떠났는데 3주 후 귀국했을 때는...휴. 우연히 타이밍 좋게 다녀온 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카이로의 피라미드뷰 피자헛. 피라미드 보며 피자를


   내가 다녀 왔던 장소와 봤던 풍경들이 TV에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평소라면 지루해서 5분도 못 견디고 채널 돌아갔을 역사 다큐를 근 한 시간 동안 마치 재미 있는 예능보듯 홀딱 빠져 끝날 때까지 보고 말았다. 


어머, 저기 왕가의 계곡이네. 
람세스 4세 무덤은 다시봐도 멋지군(?)
어머, 람세스 2세 미라찡.... 당신이 그립네여 ㅠㅠ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 저거 눈 앞에서 봤는데


여행가서 실제로 본 나일강의 노을


  혼자 이집트 역사 다큐보며 웃고, 박수치고 폭풍 리액션을 하다 다큐가 끝난 뒤 아쉬워서 입맛 다시며 뒤를 돌아봤을 땐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생이 있었다.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자는 걸 보면 아마도 다큐 시작하자마자 잔게 분명^^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동생을 보니 감격에 차서 혼자 폭풍 리액션을 했던 나에게 깊은 현타가 몰려왔다. 


  내가 그동안 어지간히도 여행을 그리워했었군. 다녀온 여행지가 나온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은 보다 잠들만한 프로그램을 예능처럼 재미나게 본 걸 보니 말이다. 코로나로 막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어지간히도 여행이 그리웠나보다. 



람세스 2세가 지은 아스완 신전



  여행아 미안하다. 


  그땐 왜 너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팍팍한 직장 생활과 타협하며 돈과 시간만 어찌어찌 잘 만들어내면 넌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옴짝달싹 못하며 집에서 다큐를 보며 너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다니. 돈과 시간을 싸들고(?) 가서 갖다바쳐도 너를 얻지 못하는 날이 오다니... (물론 갖다 바칠 시간과 돈은 지극히 비루하다)


  어리석은 나 놈아, 그때 왜 그랬어? 이왕 이집트까지 간 김에 비행기 타고 1시간 반만 가면 요르단에 가서 페트라도 보고, 사해바다 위에 둥둥 떠서 책도 읽을 수 있고, 마션에 나온 와디럼 사막도 볼 수 있었는데!!  


그깟 항공권 가격 좀 비싸다고, 피곤한데 멀리 이동하기 귀찮다고, 어차피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굳이 동동거리며 바쁘게 여행할 필요 있나며 왜 요르단 빼 버렸어....? 이젠 1년, 아니 3년, 5년이 지나도 중동쪽을 갈 수 있을거란 기약조차 없어질 줄 그 때 알았더라면 무리해서라도 다 보고 올걸. 여행 너는 언제나 돈과 시간만 싸들고 가면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지. 솔직히 말하면 헤어진 전남친보다 니가 1000배는 더 그리워. 제발 다시 돌아와주라.


  '나 놈아 왜 그랬어?' 시리즈는 이 때까지 다녔던 유럽, 아시아, 중미로까지 이어지고, 결론은 결국 '여행님아 제발 다시 돌아와주세요.'로 귀결되는 무한 여행 향수병. 이 병에 듣는 치료약을 아직 찾지 못했다.


혹시 치료약을 찾은 분이 계시면 격렬하게 댓글 제보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강제로 절제하는 삶을 산지 어느덧 1년 2개월. 절제의 미덕은 이만하면 충분히 익힌 것 같으니 나 이젠 좀 막 살고 싶어. 언제쯤 가능하겠니?


**이집트 여행기는 블로그에 연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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