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동안 방에 담겨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서일까 중2부터
방문은 두꺼운 벽이 되었다
엄마도 문 앞에 동그스름 앉은
빈 그릇을 보고
문 닫힌 목숨이 살았음을 짐작할 뿐
메인보드 같은 도시에서 그는 두더지가 되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방에 굴과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쾅쾅 노크와 가족의 한숨도
입다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날마다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우스로 벽을 탔고, 모니터 안으로 기어들어가
심연의 창을 수없이 열고 닫았다
마우스에서 손은 자랐고
손은 자라 곤궁한 몸이 되었다
널브러진 방에는, 간간이 랩만이
구두덜대며 뛰어다녔다
해수를 채운 잠수정으로 인터넷을 헤엄칠 때
모니터는 잠망경이고 마우스 불빛은 등대였다
사실 두려운 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 2019 신춘문예당선시집(문학세계사), 현대시문학(2019)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222677233607
<「두더지」詩作 노트 >
「두더지」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족)에 대해 쓴 작품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안에 틀어박혀 사람들과 의사소통은 거의 하지 않고, 주로 인터넷과 게임에만 몰두한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3~4년, 심하면 10~20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세상과 등지고 사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을 쓴 이유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써 보았다. 나도 학교에서 담임할 때 이런 학생들을 상담해 보았는데,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참고로 뒷부분에 ‘구두덜대며’는 못마땅하여 혼자서 자꾸 군소리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