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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Sep 07. 2020

내가 좋아하는, 말

#3 이예준 - 안녕과 안녕으로


몇 가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우선, 배워서 알게 되어 좋아진 단어다. 발밤발밤. 어느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발음이 좋았다. 발밤발밤발밤발밤. 입에서 오물오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단어였다. 그 뜻도 예뻤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 호다다닥 후다다닥 이런 거 말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무겁지도 않은 모양새의 걸음. 주위를 다 둘러보고선 앞을 향해 가는 듯한 그 말이 나는 좋았다.


우리, 라는 말도 좋아한다. 이건 전적으로 교육의 힘이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컸다. 나보다 우리가 우선이라는 표현 방식이 그 말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학교. 우리 집. 나의 아빠 나의 엄마 나의 학교 나의 집이라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말인데, 왜. 처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리하여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지극히도 개인적이며 무던히도 집단적인 끔찍한 혼종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가장 좋아하는 접속사도 있다. 우리, 나라의 접속사는 ‘그’를 몹시도 그리워한 사람이 만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리하여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데 그나저나... 꽤 많은 접속사가 있지만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도 많으니까. 그중에서도 단연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나는 좋다. 앞에 어떠한 결점과 단점과 시시콜콜한 무엇이 있지만.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을 하겠다는 그 표현을 좋아한다. 때론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거절한다는 반전의 매력도 있다. 그러한 까닭에 비슷한 맥락이지만 앞에 모든 것을 뭉개버리는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 이란 말을 싫어한다.


무엇보다 안녕,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한국어를 처음 접할 때 배우는 말. 철수와 영희가 하는 인사말. 만날 때 하는 말. 그리고 헤어질 때도 하는 말. 그래. 바로 그거다! 만남과 헤어짐이 같은 단어로 귀결되는 것, 그게 너무 좋았다. 어떻게 서로 정반대 상황의 표현이 같을 수가 있지.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마도 불교 사상에 심취했던 게 아닐까.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 그래서 그때마다 하는 거다. 안녕, 이라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말해도 언젠간 다시 보자는 말 같아서, 그럴 것 같아서 좋았다. 안녕이라는 말이.


이예준의 노래는, 그래서 좋았다. 원래도 좋아하는 가수였다. 뭐랄까. 좋아하는 여자 보컬의 색깔 중엔 ‘장혜진류’가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랄까. 뭔가 아랫배에서 치고 올라와서 쨍-하고 질러주는 단단한 소리. 그냥 막 여린데 날카롭게 올라가는 거랑, 공기반 소리반 섞는 거랑 다른 스타일 말이다. 장혜진이, 다비치의 이해리가, 그리고 이예준이 그러한 목소리로 노랠 부른다. 노래방에서 누군가 이렇게 노랠 불러준다면 10년 묵혔던 체증도 내려갈 거 같달까. 그래서 새로운 노래가 나왔다 하면 꽤 관심 있게 듣는데, 이번엔 그러한 목소리로 ‘처음과 끝이 같은 인사말’이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안녕- 이라는 말을. 내가 좋아하는 그 말을.



오늘은 얼마나 어느 누구에게 안녕, 이란 말을 했을까.



2020. 09. 07.


이예준 - 안녕과 안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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