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마흔 기념 쓸데없는 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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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확신이 부족했고 좋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많았던 시절의 우리와는 꽤 멀어져 있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해졌고.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시선에서 만들어졌다.
예전의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의 우리는 만나면 주로 여자 이야기였다. 20대 후반의 남자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지금 여기 어디에 예쁜 여자사람이 있네 어쩌네 하는. 그러다가 30대 중반이 되어가면서 만난 친구들은 결혼, 주식, 부동산의 이야기를 했다. 경쟁력이 사라지면서 처음 만나는 여자사람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었고 세상 가십은 잠깐 문화는 뒷전이고 결혼을 한 친구와 안 한 친구가 뒤섞이며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변되는 돈을 버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아, 탈모에 관한 대화도 조금. 남자 40살에 탈모가 없으면 상위 4%다 그러면 수능 1등급이 아니냐는 농담을 하면서.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돈을 버는 방식 일을 잘하는 방식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이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잠자코(물론, 말하기를 좋아해서 조용히 있진 않았지만) 듣고 있자니 뭐랄까, 부쩍 어른 같아 보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조롱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찾고 있었던 어른. 타산지석은 많았는데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었던 어른이 우리는 되어있을까.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된 걸까. 생각해 보면 입사하고 15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그때 햇병아리 시절에 마흔 살의 선배는, 10년이 훌쩍 넘은 선배는 분명히 어른이었는데 말이다. 좋든 싫든. 그러니까 지금의 친구들은 회사에서 그런 어른이 되어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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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지난해 어떤 일이 기억에 남았는지 되돌아봤더니 좀 아주 별거 아닌 경험이 떠올랐다. 한 번에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은 것. 보석바랑 찰옥수수였나. 새로운 콘텐츠도 많이 했고 마음에 드는 작업물도 있었고 금송아지 같은 딸내미도 너무 예쁘게 크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게 왜 생각났을까.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나눠먹고 정량을 먹고 한 번에 한 봉지, 한 개, 하나씩 먹는 것에 교육을 받고 커왔는데 그걸 그대로 당연하게 지키면서 살다가 아내와 아이가 하동에 내려갔을 때 혼자 남은 집에서 갑자기. 정말 갑자기 아, 이번엔 두 개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아이스크림 하나 따위 냠냠하기만 하고 모자란 지 오래되었는데. 그래서 보석바를 아그작아그작 찰옥수수를 호로롭 호로롭 먹고 나니, 그랬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배가 아프지도 않았고. 사실 두 개로도 좀 모자란 느낌이 있었는데 아무튼, 신나서 배우자에게 연락했다. 나 아이스크림 두 개나 먹었어! ….응? 그게 뭐. 뭔가 한심한 반응이었지만 나한테는, 지구를 약간 그러니까 아주 약간 조금 더 기울인 느낌이었다. 솔직히 반대로 돌아가는 정도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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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5년엔 40이 되었다. 오, 마흔이네. 마흔이라. 마흔? 와씨 내가 마흔이야? 생각한 기대수명은 80살이었는데 그럼 절반을 살았네. 근데 할아버지가 지금 96세라서 좀 더 살 것 같긴 해서 별 탈 없다면 절반보단 덜 산 거 같긴 한데. 뭐 이렇게 마흔이 되어도 구질구질한 거야. 어렸을 때 생각한 40은 너무 나이 든 어른이었는데. 근데 그때는 27살이면 노처녀 노총각이었고 이혼하면 TV에 나오지도 못하고 동성동본은 결혼도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게 30년 정도 전이니까 아무튼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나는 나이를 이렇게 먹었구나. 그렇구나. 좀 뭐랄까 신기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다. 36세 정도에 한 번 그리고 요즘 또 노화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다치고 난 뒤에 운동능력이 감소하기도 했고 흰머리는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거야 도대체. 그런데 먹는 양은 왜 잘 안 줄지- 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맞이한 마흔이다.
그래서 문득, 한 달에 한 번 보라미에게 간신히 허락을 맡아서 가는 농구하는 날에, 이렇게 농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이 운동을 무릎이 부서지면 더 이상 못 뛰게 되면 그제야 포기하고 못 뛰는 거 아닐까 라며 연골이 이미 아픈 무릎을 만지면서,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너무 아득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농구하던 그 기억들이 예전에는 그래도 가까운 추억이었는데.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이 아스라이 멀어진 기분이었다. 왜일까, 왜 그럴까. 이제 마흔이 되어서 그런 걸까. 과거의 시간에 질척이는 타입이면서도 늘 시선은 다음을 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나보다 어린 젊음을 부러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힘들고 약한 어른들에게 시선이 가지. 혹시 나도 그렇게 될지 몰라. 그들의 지금이 나의 미래일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은 시간은 그 어른들에게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렇게 하나둘씩 나의 젊음은 어림은 멀어지고 있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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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른이 된 것 같은 친구들을 마주하니, 한심했다. 솔직히 한심했다. 부럽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내가 뭔가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정말 아주 오랜만에 들었다. 가진 것에 비해 건강하게 받은 사랑 덕에 탄탄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게 조금,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뒤처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니면 그냥 여전히 내가 철이 없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들었다. 실제로 맞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이가 있었는데 그게 30, 33, 36이었고 40부터는 없었다. 40이 좋을까라는 의문이 있어서일까 그다음에 좋아하는 나이 같은 건 없었고 그리고 또 회사도, 힘들든 재미있든 버티고 있는 회사도 40까지 버티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설정한 대부분의 것들은 40을 넘어선 무언가가 없었다. 그게 내 한심함의 원흉이라면,
자꾸 내가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40이라는 명분으로. 근데 나는 아직도 잘 사는 것보단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잘 사는 게 행복한 거야 라는 말에 그럼 얼마나 많은 돈과 얼마나 큰 집에 살아야 행복할 건데라고 묻고 싶은 사람인데.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사랑이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인데. 내가 뒤쳐졌나, 앞으로 잘 가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아니, 꼭 앞으로 가야 하나 옆으로도 갈 수 있고 지그재그로도 갈 수 있고 아무튼 가긴 갈 텐데,라고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아무도 몰라도 나는 그래도 나를 좀 신뢰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라는 사람을. 아니면 그건 좀 슬프잖아. 근데 또 가족까지는 나를 좀 더 믿어줬으면 싶은 좀스런 마음도 약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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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잔뜩 적고 나니, 생각보다 더 한심하지만, 40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2024년에 기억에 남는 게 아이스크림 두 개 해치운 걸 떠올리며 그럼 라면도,,,,라며 얼마 전엔 짜파게티 2개에 햇반까지 먹어치워 버렸지만, 생일에 출장지 모텔에서 a4용지 3페이지나 되는 글을 쓰면서, 며칠이나 쓸 기회가 있었는데 집에서는 탱자탱자 게으르게 놀다가, 아니, 아는 사람도 몇 없는 브런치의 구독자가 300명이 넘어가는 것에 찔려서. 아무튼 기념하려고 보은(?)하려고 쓰는 한심한 글과 함께.
근데 이걸 쓰는 내내 아직 만으로는 39살이라고 생각하는 나란 인간이 제일 한심하긴 했다. 이러다 내년에 또 쓰는 거 아닌지 몰라.
2025. 0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