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움직임과 마음들에 대하여 [다행다심] #1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난 옛일이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초등학생 시절 어떤 가을운동회가 있다. 운동회의 백미는 역시 계주 아니던가. 키는 작아도 발이 빨랐다. 당시 5학년이었던 나는 반 대표로 계주 경기에 참가했다. 만국기가 하늘에 나부끼는, 눈이 부시고 바삭한 햇살들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당시 우리 반의 계주 전략은 초반에 치고 나가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고 나는 그 전략의 첨병으로 출발선에 섰다. 달리기는 늘 자신이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선 시상대에서 상장 그리고 부상인 공책 세트를 들어 올리고 포효하는 나를 그리고 있었다. 미친 듯이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레디, 스타팅 피스톨의 경쾌한 신호 소리에 맞춰 힘차게 첫 발을 내디뎠다. ‘좋았어, 느낌 좋아.’
너무 흥분했던 탓일까? 몇 발짝 못 가 몸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땅으로 추락하는 몸뚱이를 보호하려고 본능적으로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멋지게 착지, 는 무슨, 보기 좋게 넘어졌다. 아아, 야구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떠올리면 딱이겠다. 하, 관중들의 탄식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은데..... 홀연 맑았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재빨리 일어나 멀어져 가는 다른 반 주자들의 뒤를 쫓아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아차차, 바통. 허겁지겁 뒤를 돌아 바통을 집어 들고 다시 달렸다.
당연히 우리 반은 꼴등이었다. 나는 더러워진 체육복을 툭툭 털고 덤덤히 트랙을 빠져나왔다. 쓰라린 무릎과 쓰린 속을 티 낼 수 없었다. 선생님, 반 친구들에게 미안했으니까. 머쓱한 미소를 지으면서 반 친구들이 모여있는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위로하던 그때...... 결국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달리기 진짜 자신 있었는데.......’ 창피했다. 억울했다. 분노가 끓어올랐고,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다.
그때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건 10여 년이 지나 대학에서 ‘스포츠심리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던 때였다. "(교수) 자,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이야기 나눠봅시다." 흥미로웠다. 스포츠심리학 수업에서 다루던 ‘자신감’, ‘심상’, ‘불안’, ‘귀인’ 같은 개념들이 과거 운동회에서 벌어진 경험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넘치는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출발선 앞에서의 떨림이라든지, 큰 실수를 하고 난 뒤의 쓰렸던 감정과 대처 같은 것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스포츠(신체활동) 상황에서의 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좋았던 것 같다. 스포츠심리학에 한 학기 내내 푹 빠져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스포츠멘탈코칭’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선수들의 몸과 마음이 내뱉는 언어를 배웠고, 몸으로 이루는 서사에서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마음들이 스포츠와 삶에서 어떻게 촘촘히 이어져 나가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고 공부했던 스포츠에서의 수많은 균열과 생성들, 성장과 추락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그냥 스포츠와 얽힌 마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 될 것을 말이 거창했다. 그저 바람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선수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마음 참고서(?)가 되었으면 한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인 담론적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바라볼 줄 아는 용기를 주는, 나아가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으면... '휴, 쓰고 보니 바람이 하나가 아니구나.' (그래도 괜찮아...)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선수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