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은 리듬

다양한 움직임과 마음들에 대하여 [다행다심] #4

by yeedle


홈트(홈 트레이닝)를 시작했다. 점점 불어나는 뱃살과 물결치듯 굽어가는 등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그래야만 했다. 지금껏 의욕적으로, 마치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라도 치르는 듯 거창하게 시작한 것들은 모조리 실패로 끝났다. 팔굽혀펴기 50개, 스쿼트 50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하자고 마음 먹었다. 3일차. 몸이 펌핑되니 마음까지 펌핑되기 시작했다.


“손목이 아픈 것 같은데, 보호대 하나쯤은 있어야지. 아, 푸쉬업 바도 필요하겠다. 손목은 소중하니까. 단백질 파우더는? 파우더를 담을 쉐이커 통은? 맨몸운동만 하면 지겨울 수도 있어. 덤벨 하나 사자. 바벨은 또 어쩔 거고. 기구 내려놓으면 층간소음 날 테니 매트도 하나 깔자. 아 헬스벤치가 좀 아쉽네…”


난 홈트를 하려고 했던건데, 방 안이 순식간에 ‘홈짐’이 됐다. 운동을 안 해도 이미 운동을 한 것 같은 기분. 어딘가 거창한 시작, 아, 불길하다... 홈짐을 완성하고(?) 난 뒤 따라온 건 작은 의심이었다. “아, 또 이러다 그만두는 건 아니야?”


의심하는 마음은 일종의 불안이다. 내가 해낼 수 있을지, 혹은 무너질지 같은 가능성과 위협을 과도하게 탐지하려는 심리적 경향. 의심은 불안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염려와 불안 덕분에 오늘 운동 완료! 오운완이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불안은 실패의 예고장이 아니라,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 오히려 나를 푸쉬업바 앞으로 데려다주는 신묘한 트레이너이자 동반자였다(물론 적당한 수준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완벽한 의지나 그럴싸한 계획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불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사실. 적당한 불안은 나의 경계심과 동기를 올려주었다. 결국 꾸준함은 위대한 각오나 강력한 동기에서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시도에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그리고 그 불안을 견디며 한 발 더 나아가는 힘에서 자라나기도 한다.


꾸준함의 가치는 성취가 아니라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꾸준한 반복이 만들어주는 삶의 리듬은 내 몸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테니까. 드럼도, 북소리도 아닌, 그저 묵묵히 박자를 이어가는 메트로놈처럼. 소리는 작지만, 삶 전체의 템포를 지탱하는 박자처럼 말이다.


이들


(Photo by Rachel Lough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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