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움직임과 마음들에 대하여 [다행다심] #3
얼마 전 양궁 선수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양궁 훈련장을 방문했는데 그만 시간착오로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버렸다. 나를 맞아준 건 만나기로 한 선수들을 지도하는 A 감독님.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신이 ‘왜’, ‘지금’, ‘여기에’라는 표정이 감독님 얼굴에 쓰여 있었으니까.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 본래 약속된 시간까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A 감독님이 활을 한 번 쏴 보겠냐며 제안하셨다. 역시 (양궁)전문가. 순간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쾌히 A감독님을 따라나섰고 예정에 없던 양궁실업팀 감독님의 1:1 밀착코칭이 시작됐다.
체험용 활을 꺼내오셨다. 그리 무겁진 않았다. 과녁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A 감독님의 설명은 매우 재밌고 친절했다. 직접 활을 쥐는 법부터 활을 올리는 법, 바른 자세, 과녁에 꽂힌 활을 빼는 방법들을 아주 자세히, 그것도 매우 신나서 알려주시는 게 아닌가. 들으면서 생각했다. 감독님은 확신의 대문자 E 타입의 사람이다라고. 알고 보니 양궁협회 임원이셨던 감독님은 양궁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종목이다 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양궁을 알리려고 노력하시는 거라고. 상대의 정성에는 최선으로 응수하는 법, 감독님의 말을 차곡차곡 몸에 새겼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이제 직접 쏴 보라는 감독님 말씀에 사대에 올랐다. 활을 잡아 올리고 모든 신경을 과녁에 집중,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내 마음에 몇 가지 단어들이 살곰살곰 떠올랐다.
첫째는 (당연히)'집중(集中)'. 비단 양궁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고 모든 스포츠에서 꼭 필요한 덕이기도 하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과녁에 화살을 꽂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당겼던 활줄은 몸의 움직임이 최소화되는 순간이 아닌 부유하는 마음과 정신이 방향성을 품고 나아갈 곳, 그러니까 과녁을 향해 일제히 돌진하겠다는 마음이 선명해지고 나면 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은 '일관(一貫)'. 초보양궁인 내가 3번 만에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꽂았다. 나는 환호했다. 감독님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동시에 방금 쐈던 자세와 느낌을 잘 더듬어보라고 덧붙이셨다. 곧바로 이어진 시도에서 또다시 과녁 정중앙, 은 무슨 알아서 고개를 떨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득점?을 위해 필요한 올바른 몸의 자세와 평온한 마음상태를 갖추는 것이. 한 번 얻어걸리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일관되게 좋은 성과를 낸다는 건 지겨울 정도로 정직한 땀을 흘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시몬스(SIMMONS)적 편안함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팀의 일관된 어금대(어차피 금메달은 대한민국) 퍼포먼스를 위해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라고 확신했던 순간.
마지막으로 '공존(共存)'이다. 양궁에는 다양한 공존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집중과 더불어 양궁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멈추는 힘이다. 팔이나 다리, 몸 어느 한 곳이라도 흔들리면 활을 쏠 수 없다. 양궁은 올림픽 기준으로 사대와 과녁의 거리가 70m인데 사대에서의 2mm 차이가 과녁에서는 38cm의 거리차를 벌린다고 한다. 마주 오는 바람을 활짝 온몸으로 맞아내면서 두 발로 흔들림 없이 몸을 지탱할 줄 알아야 했다. 그렇게 내가 가졌던 고유한 리듬들은 일제히 멈춘다. 활을 쏠 때의 절제된 나는 세상과 단절된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가 목표물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됐다. '단절'과 '연결'의 공존이다. 또 다른 공존이 있다. 활을 다 쏘고 나서 직접 활을 뽑으러 과녁으로 걸어가던 때에 (다 쐈다는) 후련과 (더 잘 쏘지 못했다는) 후회, (10점의) 성취와 (1점의) 실패, (나는 로빈훗이다 하는) 상상과 (처참한 수준의) 현실 같은 것들이 뒤섞여 떠올랐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빠르게 달리는 시간, 자연과 인공 많은 것들이 양궁에는 함께 존재했다. 역설적인 공존의 탐험을 선사하는 양궁 체험을 마치며 양궁에 푹 빠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양궁 체험 한 번에 무슨 인생의 참 진리를 깨우친 도인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양궁도, 인생도. 살면서 생각처럼 발휘하기 쉽지 않은 미덕들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부디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 있기를.
이들
(Photo by Vince Flem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