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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되고 싶는 것은 없어요.

정원사세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되고 싶는 것은 없어요.


직업에 대한 질문을 종종 듣는다. 

"무슨 일을 하세요?"


나름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재차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요?"


"생태적인 농사나 삶의 방식을 정원 워크숍에 반영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명상도 하고, 정원도 만들어요. 때때로 관련 책을 번역하기도 하고, 해외 연사를 초청하기도 합니다. 주로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 '나는 주부인가'라는 생각을 해요."


내가 존재하는 방식에 조금 더 방점을 두게 된 이후,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되고 싶은 것은 없기에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직업명이라는 것을 정하지 못하는 이유인데,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마 모든 활동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니까, 예술가인가? 싶었지만 뭐랄까 '바로 이거야'라는 마음이 들지가 않았고, 마음 한 켠이 편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분이 나에게 꿈을 물어봤다. 그래도 되고 싶은 것이 있지 않냐면서. 하지만 그분이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는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나로서 존재해 나가고 싶고,
그 힘이 내 생활 밖으로 발산이 되면 일로서 성립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대답을 했는데, 그분을 얼굴을 보니 갸우뚱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 마음이 나도 이해가 된다. 나도 남들이 들었을 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잘 되지가 않으니 나 역시도 안타깝다. 사실 나만큼 안타까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를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이 되기 위해서 내린 선택들에는 늘 부족함이라는 두려움이 꼬리표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내리는 선택들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따라왔다.


그래서 자기소개에 이런저런 새로운 직업명을 만들어서 붙였다가도, 결국에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동사를 사용해서 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지금은 나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을 때 위화감이 없고,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과 자연이 갖고 있는 야생성을 회복시키는 숲정원 만들기 워크숍을 하고, 여성들을 위한 주거공간을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직업명은? 

... 그냥 나입니다. (혹은 백수!?)


PS) 최근 샨티 출판사에서 나온 문숙 님의 <위대한 일은 없다.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 - 이 책을 읽다 보면 지금처럼 살아가도 된다는 화답을 듣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래 사진은 책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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