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세이
꽃 일을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지금 처럼 꽃값이 비쌀 때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처럼 꽃을 꽂을 때 자유를 느껴진 적도 없었다. 나의 창의력은 아이러니 하게도 비싼 꽃가격과 함께 되돌아 온 것이다. 무작정 꽃을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예의 그 파고드는 성격탓에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 전국은 물론 다른 나라까지 찾아다니며 꽃을 배웠다. 그 일은 힘들었지만 무척 보람 있었고 또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온 실력을 펼치기도 전에 나의 디자인은 꽃시장에서 결정되고 말았다. 화가의 물감은 어느 색이든 같은 제품이라면 그 가격이 또같을 것이다. 하지만 꽃의 가격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처음 꽃시장에 갔을 때, 어느 꽃이 더 예쁘고 좋은 꽃이냐는 굳이 내가 판단 할 필요도 없었다. 꽃의 등급은 도매시장 사장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가격에 의해 가차없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 꽃은 좀 애매한데... 해도 비싼 가격이 불려지면, 나도모르게 아~ 좋은 꽃이구나 한다. 내 눈에는 너무 예뻐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면 또 아~이건 그런 꽃(?)이구나 하게되었다.
꽃의 등급은 비단 꽃시장에서 가격을 들었을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후에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상품을 만들때도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는 꽃과 그저 꽃과 꽃사이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꽃들이 이미 정해진 것이다. 어느꽃이 예쁘지 않겠는가. 어느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역할의 분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사실 꽃일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손님들은 내가 이 상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해 왔는지 전혀 고려해 주지 않으셨다. 우리는 철저하게 재료비에 얽메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꽃을 고르고 다듬고 디자인 하는 모든 과정에 나의 '정성'과 '애씀'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음에도 철저하게 재료비만 따지게 되는 현실. 이거 꽃시장에 가면 얼마 하던데... 라는 이야기를 아직도 손님들 입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상처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 만큼 꽃은 가격이 매겨져있고 나의 꽃 디자인은 그 가격에 얽메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나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꽃시장에 가면 두가지 사실에 놀란다. 20년이라는 세월의 변화도 있겠지만 꽃가격이 무척 비싸고, 모든 꽃이 다 비싸다는 것이다. 재료비의 상승은 얼핏 들으면 꽃상품을 디자인 하는데 더 제약을 줄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모든 꽃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더이상 꽃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장미는 더이상 주인공이 아니고 소국은 더이상 소위 '속박이'로 불리던 그저 플로랄폼을 가리는 용도의 꽃이 아니다. 꽃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꽃 하나하나가 작품안에서 다 잘 드러나도록 디자인 역시 변화되고 있다. 모든 꽃 하나하나가 그 매력을 다 들어내도 된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를 가지고 온 데에는 지금 꽃집을 운영하는 젊은 세대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20대에 꽃집을 처음 열고 꽃시장에 갔을때는 내 또래가 별로 없었다. 물론 서울은 분위가 좀 달라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지방은 여전히 나이가 지긋한 꽃선생님들이나 꽃집을 운영하는 중년의 사장님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꽃을 가르친다고 하면 동양꽃꽂이가 대부분이었고, 일본에서 들어온 서양꽃꽂이가 조금씩 섞여들고 있는 분위기였다. 꽃집에서는 말 할 것도 없이 장미에 안개를 두른 디자인이 대부분일 때였다. 그 때는 꽃의 종류도 많지 않았지만, 꽃의 형태에 따라 역할이 정해져 있는 시기였고, 그 역할에 따라 가격 역시 정해져 있었다. 꽃자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꽃이 만들어 내는 형태를 배우던 시절이라 그 형태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깐깐한 꽃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견뎌야만 했다. 나를 영국까지 가게 만든 것 역시 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였다. 나는 동양꽃꽂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그 때 나는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정신수양으로 까지 이어지는 형이상학적인 그 여백의 정신을 이해할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흐드러지게 핀 꽃이 예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친구들이 꽃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풍요롭게 자랐고, 사랑받고 자랐기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는 것 같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예쁜 친구는 공주역할이고 나는 무수리(?) 역할이나 하는 것이 편안했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정해 준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모두가 저마다의 예쁨과 매력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는 세대라니! 너무 예쁘고 기특하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꽃꽂이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나도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얽메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 말은 사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에 얽메여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고, 다양한 꽃을 존중 할 줄 아는 마음을 나는 요즘 다시 배우고 있다. 나는 '메리골드'라는 흔히 금잔화 라고 불리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어릴때 읽었던 소설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꽃인데, 그 때는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몰랐다. 허브처럼 독특한 향이 나는 메리골드는 경쾌한 이름 만큼이나 경쾌한 컬러로 화단에도 많이 심은 꽃이다. 나는 이 꽃을 좋아하지만 단 한 번도 이 꽃을 전면에 꽃아 본 적이 없다. 나는 소국 역시 무척 좋아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꽃을 찾는 손님들께 주로 권해드릴 뿐이었다. 안개꽃은 장미주위에 둘렀던 기억이 나서 너무 전형적인 꽃으로 느껴져 우리 꽃집에서는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의 가격이 올라 모든 꽃이 비싸지게 되니, 그것은 오히려 꽃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전형적인 꽃들도 특별해 보인다고 할까.
기술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꽃 자체를 보는 것도 나는 요즘 새삼스럽게 배우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다양한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외국의 플로리스트 작품집이나 어렵게 구해온 외국 잡지에서 보던 꽃들을 이제는 꽃시장에서 거의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부족했는지 염색 기술이 발달해 다양한 색으로 염색된 꽃도 등장하고 있다. 독특한 색이거나, 굉장히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색도 있지만 가짜가 아닌 진짜에 더해진 오묘한 컬러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기존에 색을 가진 꽃에 색을 덧 입혀서 정말 특별한 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누가 했을까 절로 궁금해 지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재료의 스펙트럼 또한 굉장히 넓어진 요즘이다. 그야말로 꽃꽂이 할 맛이 나는 요즘이다.
자기가 손에 쥔것은 다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의 마법이 부럽다
나는 왜 그토록 많은 것에 구애받고 살아왔던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유로운 그들이 부럽다. 자기가 손에 쥔것은 다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의 마법이 부럽다. 꽃가격이 다 같이 비싸지면서 가격에 따라 얽메여 있던 역할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나는 충분히 느끼고자 한다. 물론 자영업자로서 재료비 상승의 압박이 주는 고통 또한 무척 크다. 그동안 재료비에 얽메여 온 것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인건비를 측정한는데도 박하지 않다. 그 당당함 역시 내가 꼭 배우고 싶은 중요 덕목인 것이다.
그렇게 자라 왔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세대차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없다. 내가 벌써 세대차이를 입에 올리는 나이가 되었다니... 나는 차라리 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이 편했고, 손님들이 꽃시장의 꽃가격을 논하기전에 내가 먼저 알아서 가격을 낯추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 가격이 아닌 꽃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고 내 노동력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이제 꽃은 다 비싸고 꽃을 배우기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던 나의 시간들도 무척 소중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대하는 예술가의 마음과 꽃을 대하는 플로리스트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이제는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