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생일은 누가 챙겨주나요

며느리도 딸도 아닌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by aloha


여자는 시어머니가 내미신 봉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만 있었다. 이게 뭐예요, 어머니? 너 생일이잖아. 필요한 데 써. 아니 뭐 이런 걸 다... 챙겨주시고 그러세요. 하지만 여자는 그 하얀 봉투를 넙죽 받는 것이 예의일지, 아니면 거절하면서 잠깐이라도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예의인지 헷갈렸다. 돈 봉투라고 잽싸게 챙긴다는 말도, 시어미 성의를 무시하더라는 말도 둘 다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여자는 두 번의 거절과 '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그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하고 4년 만에 시어머니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감격해마지 않아야 할 순간 여자는 뭔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어머님은 아마 내 생일이 언제인지 잘 모르실 거야. 사위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친정엄마에게 여자는 민망한 듯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내 이름도 잘 모르시는 것 같던데, 뭘. 이제껏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난감해 하시면서 대충 저기, 여기, 쟤라고 얼버무리시거나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고갯짓을 하신다니깐. 그런 분이 며느리 생일에 뭐 관심이나 있으시겠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쓰자면 끝이 없는 거야.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는 친정 엄마도 결혼 후 여자의 첫 생일을 그냥 넘어간 시댁에 섭섭함을 드러내셨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은 며느리 첫 생일은 아는 척하신다는데... 그 대식구가 아무도 아는척을 안한거야? **이 집은 누나들이 나서서 챙긴다고 한던데... 그러니깐 엄마도 *서방 생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는 그냥 우리 둘이 서로 챙기면 된다니깐.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게, 엄마가 사위 생일 챙기니깐 나도 자꾸 시댁에 섭섭한 마음이 생기려고 하잖아. 양쪽 집에서 서로 안 챙기면 그만인데 말이야. 하지만 해마다 친정엄마는 사위의 생일날 반찬통 사이에 용돈 봉투를 넣어서 보내주었다. 흰 봉투 겉면에는 투박한 글씨로 '*서방 생일 축하해, 생일날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의 언니도 잊지 않고 생일 케이크를 보내 주었다.



사위에게 친정아버지가 주신 옷 선물과 명절마다 미리 준비해놓으신 시댁 선물까지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마음 써주시는 친정에 고마워해야 할 텐데... 그럴수록 여자의 마음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갔다. 어디 모자란 딸 시집보낸 거야? 시댁에서는 신경도 안 쓰시는 데 안하셔도 된다니깐. 여자의 외침은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민망함을 애써 덮고 있었다. 가족 간에 주고받고 다 따지는 거 아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지. 엄마가 그런 거 따진다고 사위 생일에 용돈 한 푼도 못 주면 그게 말이 되냐? 사돈댁은 식구들이 많아서 며느리 생일까지 기억 못하시는거야.



여보, 혹시 어머님께서 최근에 내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신 적 있어? 아니, 없었던 것 같은데. 시어머니가 주신 봉투를 내려다보며 여자는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어머님은 내 생일을 알고 계셨구나. 응? 뭐라고? 아니야. 아무것도. 여자는 시어머니가 자신의 생일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가 더 마음이 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핑계라도 있었지. 아마 몰라서 못 챙겨 주셨을 거라는 핑계 말이야.








여자의 생일은 순서 상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 다음이었다. 지난 시부모님의 생신 때가 생각났다. 보통 생신을 앞둔 주말에 가까이 계시는 형님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여자의 남편이 돈이나 케이크 쿠폰을 형님에게 보내드리면 형님이 케이크를 준비해 오셨다. 나중에 왜 그렇게 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남편은 조카들이 케이크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했다. 케이크를 고르며 좋아할 조카들을 생각하는 남편의 모습에 여자는 더이상 말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생신 선물이나 용돈은 남편이 알아서 시부모님께 챙겨드렸다. 다른 지역에 계신 형님들은 편할 때 따로 찾아오는 것 같았다. 여자 역시 친정 부모님의 생신을 여자가 알아서 챙겨드리고 있지만, 사실 여유가 없을 때는 그냥 넘어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세세한 이야기는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시부모님 생신은 코로나로 인해 형님 가족이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남편과 둘이서만 시댁을 방문하게 된 여자는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케이크를 주문하고, 조카들을 대신해 생일 축하 노래도 목청껏 불렀다. 조용한 성격의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케이크를 꺼내 놓고 내내 쭈뼛거리는 아들과 시부모님들의 모습에 여자가 용기를 낸 것이다. 항상 딸과 손자들로 북적이던 시댁을 채우고 있던 그날의 적막함이 여자를 떠민 것일 지도 몰랐다. 혹시 그래서?여자는 생각했다. 아니면 결국 자신들에게 남겨질 아들, 며느리에 대한 회유책 일지도 몰랐다. 코로나가 심해지니깐 형님들은 아무도 시댁에 안오시잖아...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변화에 여자는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 진 시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변화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여자는 또 '시댁'과 '며느리'라는 큰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내내 본체만체 하시다가 갑자기 용돈을 주시니... 생각이 많아 지는건 과연 내가 예민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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