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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S Nov 12. 2023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것

해녀의 부엌 - 해녀이야기, 동화책 - 여행 가는 날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 있다 해서 해녀의 부엌을 찾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과 해녀들의 이야기, 맛있는 식사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색다른 곳이라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예약한 곳이었다. 연극은 제주 종달리에서 어렸을 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해녀 춘옥의 삶을 그렸다. 어린 나이에 오빠가 잡혀간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일찍이 물질을 시작한 춘옥이 바다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 결혼 후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홀로 오남매를 키운 이야기, 그리고 춘옥의 진짜 꿈이 찬찬히 펼쳐졌다. 연극배우들의 열연 끝에 마지막에는 '진짜 춘옥'이 나타나 젊은 춘옥을 위로했다. “춘옥아 잘 살았다. 잘했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대단한 무대장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배우들의 몸짓에, 그 진심을 전하는 목소리에, 마지막에 등장한 '진짜 춘옥’의 묵직한 한마디에 눈물이 나왔다. 사실 연극보다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요리한 해녀의 밥상을 기대하고 간 것이었는데, 밥을 먹기도 전에 무언가로 가득 충만해진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받은 감동은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식사를 한 뒤, 관객들이 적은 질문지에 춘옥 할머니가 답하는 짧은 인터뷰가 있었다. 물질하며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물질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할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바로 답했다. “먹고살라고, 오남매 자식 키울라고 했지.”      


짧은 답이었지만, 굵고 강력한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있는지를 알아채는 건 관객의 몫일 테다. 듣는 사람의 삶의 여정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는 그 말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춘옥 할머니는 생존을 위해서, 자식들의 삶을 위해서, 매번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갔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는 도시에 살고, 아직 아이가 없는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자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한층 겸허해질 수 있을까? 자잘하고 사소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게 될까?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이 있을 수 있을까?     


근원적인 질문이라 정답이 있을 것 같다가도, 머릿속은 막연하기만 했다. 나의 죽음은 물론 이제 백발이 다된 부모님의 죽음조차 상상도 안 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인생은 한낱 꿈이라고, 짧은 여행이라고들 하지만 내 삶이 곧 마무리된다고 가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삶이 재미없고 지루할 때면 빨리 늙어서 죽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역시나 죽음이란 두 글자는 투명글자 취급을 하고 싶은 단어였다.  

    



92세의 해녀, 춘옥 할머니는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며 담담했다. 팔을 휘저으며 노동요를 들려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젊어서 노를 젓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힘차고 정겨웠다. 구슬픔은 전혀 없었다. 할머니는 그 순간만큼은 젊은 춘옥이었다.     

 

앞으로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면, 매주 이어지는 공연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춘옥 할머니는 젊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거센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바다로 향했던 그때처럼.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 오히려 매 순간 충실한 것, 춘옥 할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배움이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죽는 날이 아쉽지 않게 하루하루를 잘 산다면, 진정성 있게 산다면, 죽음은 또 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오히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면, 그래서 죽는 날이 ‘여행 가는 날’이 될 수 있다면, 그것 참 잘 살아온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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