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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Oct 01. 2023

고양이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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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 이느무 냥이 시키들...


일주일에 한 번은 각 잡고 글 한편을 써보리라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치면 이느무 냥이 시키들이 지 세상을 만난 양 우다다를 한다. 식탁에서 거실 소파, 앞베란다 캣타워를 지나 다시 식탁으로... 노랑이 첼시가 도망가면 까망이 루시가 쫓아간다. 또 잠시 후엔 쫓아가던 까망이가 도망가고 도망가던 노랑이가 쫓아가는, 우당탕 술래잡기 놀이가 한참 이어진다. 야! 나도 할 수 있어! 고양이판 어질리티가 있다면 챔피언감이다. 어째 조용하다 싶어 주위를 살피면 첼루시는 캣타워 위아래로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래 다시 집중... 어느새 부드러운 감촉이 발치에서 느껴진다. 첼시가 옆구리를 내 발치에 대고 앞발을 그루밍한다. 루시는 노트북 뒤에 길게 누워 부담스럽게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첼시를 밟지 않도록 가만히 일어나 뒷베란다에 숨겨둔 츄르 한 개를 가져온다.


에잇! 오늘은 일주일 동안 구상했던 매거진 노느니 일한다의 다음 편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틀려 버렸다. 이참에 우리 첼루시 자랑이나 해볼까! 남편자랑,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 수년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고양이 앞에서는 입이 터져버린다. 전 국민 1가정 1고양이가 될 때까지 추천을 하고 싶지만 반려동물 추천은 선교활동과 같다. 적당히 누울 자리 봐가며 가랑비에 옷 젖듯 해야 한다.


일단 고양이는 사람새끼보다 이쁘다. 내가 아이 둘을 키워봐서 안다. 나는 세상에서 내 새끼가 제일 이쁘다. 그런데 두 달 된 아기 고양이 첼시가 집에 오자 그 이쁜 내 새끼보다 더 이쁜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결국 이것을 인정해야만 내 마음이 고양이에게 홀릴 수밖에 없었다는 전제가 흔들리지 않는다. 이건 키워봐야 알 수 있는 거라 더 자세히 더 실감 나게 표현할 길이 없다. 마치 사탕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아이에게 사탕의 달콤한 맛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할까. 여기까지 써놓고 과연 내 필력으로 얼마나 적절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늘 손 닿지 않는 곳에 앉아 약 올리듯 사랑한다며 눈을 까아암~박하는 첼시와 공감능력을 5%만 갖고 탄생한 AI 같은 루시를 보자 '다시 태어난다면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이렇게 말이지...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어떤 잘못을 해도 그저 이쁘기만 한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타고난 미모에 안주하지 않고 늘 단장하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없이 투명한 유리알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무심하다 싶으면

놀아달라 보챌 줄 아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세상근심을 잊게 하는 부드러운 몸을 가진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나

애간장을 태우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함부로 건들면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이빨로 응징해 버리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도록

누군가의 기도를 받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나 잠옷 위에 누워 학교 간 누나를 기다리는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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