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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롱지다 Jul 20. 2024

7월의 밤

2407200246

이제 좀 괜찮아졌다 써놓고

까만 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아진 걸까?

괜찮다고 생각한 마음이 문장이 되었다가

지워지길 수십 번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와 버리면

꼭 거짓말쟁이처럼

모든 게 시시포스의 돌이 되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


은은한 밝기로 빛을 내던 동그란 달이

허연빛 구름장막 사이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서너 번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달도 구름도 보이지 않은

까만 밤만 남아버렸다.



복직을 하고 아이의 우울증이 다시 심해졌다. 가족들 누구든 한 사람은 아이 곁에 지켜야 할 정도로 난감하고 위급한 순간들이 꿈인 듯 지나갔다.


아이가 먹고 있던 우울증 약이 문제였다는 걸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약이라고 한다) 그 후 초진 예약이 불가능한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약처방이 달라지니 두 달이 된 지금까지 아이는 별 탈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3분 만에 끝난 어제 진료에서 선생님은 지금 먹는 약을 그대로 유지하고 3주 뒤에 만나자고 했단다.   


아이는 약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참 많은 시도를 해왔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책과 영화, 뮤지컬에 빠져 지내다가 그 모든 것의 무상함에 멍해지길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슬쩍 권해보았더니 지난 4월 이후 눈길도 안 주던 문제집들을 풀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랐다면 목적 없는 공부를 밥 먹고 양치하는 루틴처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현재의 신분은 재수생이니까.


요즘은 저녁마다 아이와 함께 수능공부를 한다. 낮동안 아이가 공부하다 틀린 문제를 같이 풀어보는 것이다. 눈이 침침해 잔뜩 찡그리며 지문을 읽어보는데 아이는 이미 답을 알고 있고 나는 그 답을 맞히는 게임이 생각보다 두근두근 흥미롭다. 내가 틀리면 아이는 실룩이는 입꼬리를 서둘러 감추고 무심히 틀린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영어는 아이가 나보다 낫지만 국어는 역시 내가 아이보다 잘한다.

때론 내 쪽에서 회사일에 지쳐 쉬어가자고 하거나 아이가 친구랑 술 마시고 놀겠다고 빼먹는 날도 있지만,


그다음 날엔 하니까 그러면 되는 거니까… 하며 7월의 밤 무사했던 하루를 이렇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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