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 산책 일기
또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스무 살 이후로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필요에 의해서 그 지역에 살게 된 것이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온 건 학교도, 일도 아닌 친구네 집에 방문하면서 받았던 동네에 대한 첫인상 덕분이다. 역에서 내려 친구네 집으로 가는 길에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보았다. 체감상이었지만 이 동네 인구 구성비는 나이별로 균등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살아온 사람과 오래 살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니 이 동네가 아주 오래오래 지속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느 동네에 살든 언젠가 떠날 곳이라 생각할 뿐 지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집과 역, 역과 집을 다니며 길에 무심히 배출되어 있는 쓰레기들을 보며 다들 고만고만한 삶을 유지하느라 바쁘구나,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동네의 분위기 속에서 나도 쓰레기봉투를 하나 더 얹을 뿐. 이웃과 동네라는 건 응답하는 과거에나 있는 말이었다. 서울의 어느 동네에 살든 집이라 부르기도 뭣한 나의 '방'은 임시 거처에 불과하고 내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잠시 머무는 공간이자 내 짐들의 보관소였다.
그런데 친구네 도착하기 전까지 십여 분의 짧은 시간을 걸으며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신기했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모든 곳에서 생활의 온기를 느끼는 건 아니다. 처음 가는 동네에서 오랜만에 무언가를 찾은 듯한 안정감, 이곳에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친구네 동네 근처로 이사를 했다.
도시에서 '길거리'하면 떠오르는 것들. 도로의 매연과 자동차 소음, 마트와 편의점의 할인 정보들, 치킨집, 고깃집의 기름 연기 가득한 냄새, 호프, 노래방, 당구장 간판에서 뿜어내는 원색의 강한 빛. 너무나 익숙해진 자극들. 새소리는 사라지고 여름의 매미는 더 크게 울어야 한다.
이 동네도 서울의 어느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들을 지나 불광천에 다다르면 고요함이 찾아온다. 도로 위에서 천변 아래로 잠시 내려왔을 뿐인데 차 소리가 멀어지고 풀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천이 도시를 가르고 건물들은 침범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넓은 하늘이 생긴다. 서울의 하늘은 좁다. 그러나 불광천의 하늘은 넓다. 벌어진 하늘 사이 시선을 돌러 땅과 닿는 그 끝을 보면 저 멀리 북한산의 일부가 보인다. 먼 산을 볼 수 있는 것. 나는 이런 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천변을 따라 자리 잡은 풀은 제멋대로여서 예쁘다. 물속에는 물고기가, 물 밖에는 새가 있는 게 당연해서 좋다. 천변을 걷다가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머리 위로 하얗고 커다란 존재가 날개를 유유히 저으며 떠가고 있다. 익룡인가, 순간 현실감을 잃는다. 천변 보도로 사람이 다니고 개도 다닌다. 개들을 항상 바쁘고 주인은 끌려다닌다.
도시가 필요해서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것들이 얽힌 복잡함에 쉽게 초조해진다. 그럴 땐 산책을 한다. 시야는 넓어지고 숨은 길어진다. 의자 위 엉덩이가 지루해지는 오후의 시간, 잠시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균형을 지킨다.
핸드폰 사진 앨범 속 가득한 불광천 풍경. 친구가 근황을 물으면 나는 요 며칠 왜가리를 지켜본 일이 먼저 떠올랐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우리 동네가 좋다고 말하는 게 진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