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6.
창문을 여니 아카시아 향이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나무에 초록빛이 가득하고 미풍이 부는 아름다운 날이다. 그런데 이런 날은 꼭 미세먼지가 좋지 않아 모든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오후에 밖으로 나갔다. 어르신들은 미세먼지 따위 개의치 않고 장기를 활발하게 두고 계신다. 매번 사진으로 몹시 찍고 싶은 풍경이나 차마 그러지 못한다. 눈들이 너무 많다. 시간 많은 관찰자가 모여있다. 내가 그들을 관찰한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간직하고 싶은 장면을 볼 때마다 그 대상에 대한 나의 태도가 어떠한 건지 살핀다. 예찬하는 건지, 귀엽다는 건지, 깔보는 건지. '누군가를 비웃고 싶진 않아.’라고 되뇌며 경계하는 마음,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불광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수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산책하는 자세가 조금 경직됐다. 억지로 의무감에 찍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가는 대로 이미지를 수집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곧 흥미로운 장면에 사로잡혀 오늘도 이것저것 찍는다.
오늘의 인상적인 장면. 벌써 여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1. 여름 준비
며칠 전 왜가리가 사냥하던 곳. 치어와 성어들이 각각 모여 생존을 위해 둥그렇게 원을 그리던 곳. 둑이 한쪽이 터져 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건천인 불광천에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건 드문 일이다. 어린 물고기들이 괜찮은지 들여다보니 잘 있는 거 같다. 오히려 수심이 깊어져 좋으려나 싶고.
조금 더 걷다가 둑 한쪽이 무너진 이유를 알았다. 분수대를 정비하느라 상류 쪽에 물을 다 빼기 위해 둑을 터놓은 거였다. 분수대를 정비하시는 분들이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 그 바로 옆 계단에는 찜질방에서 본 적 있는 아래는 빨갛고 뚜껑은 하얀 커다란 보냉 물통과 햇볕을 직통으로 받아 뜨끈할 거 같은 파워 에이트가 두 개 놓여 있다. 여름밤이면 분수가 알록달록한 빛과 함께 쇼를 할 것이다.
2. 응암 폭포(내가 이름 붙임)
불광천은 응암역부터 드러나 있다. 천이 보이기 시작하는 다리에서 물이 장막처럼 불광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마치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 뒤로 천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도로로 덮여있다. 다래 아래 어두컴컴한 곳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으스스하다. 자세히 알려고 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다. 풍경이 순식간에 유쾌해진다. 아주머니 뒤로는 물레방아 모형과 위로 무심히 쌓인 돌, 그리고 그 사이로 자란 수풀이 어우러져 흡사 계곡의 풍경을 완성한다. 다만 자연의 편편한 바위 대신 시멘트로 발라놓은 직각의 반듯한 단상이라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지만, 거기에 자연스럽게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모습을 보니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