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SI(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서 만난 설계자 부장님이 계셨다.
그때는 소위 땜빵 프로젝트 기존 개발자를 잘라서 중간에 내가 투입되었다.
그 당시 나는 과장급인데 부장급이 잘리고 내가 그분이 하던 모든 걸 맡게 되었다.
나는 개발자로 투입되고, 기존 설계를 하던 설계자 부장님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투입 첫날 노트북에 보안 프로그램도 설치 안 했는데 수정사항을 6개나 던져주고 빨리 하라고 했다.
당황했지만 투입 첫날부터 야근을 하게 되었다.
설계자의 업무는 현업과 협의하여 화면 설계와 DB설계를 해주면, 개발자가 개발하는 구조였다.
설계자는 개발자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잘해줘야 한다.
부장님은 설명을 깔끔하게 잘해주셨다.
내가 여태 만난 설계자 중엔 최고였다.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부장님은 항상 나에게 과분할 만큼 칭찬을 해주셨다.
9개월의 SI프로젝트를 마치고 설계자 부장님 먼저 철수를 하셨다.
나는 SM(운영, 유지보수)로 1년 동안 더 있다가 철수를 하였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마음 맞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반드시 생긴다.
다른 프로젝트 투입, 철수 시점에 항상 연락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다.
그중에 설계자 부장님도 계셨다.
연락을 하다가 우연히 가까운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따로 만나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었었다.
부장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내가 30년 넘게 이 바닥에 있었지만 책임님(나)이 개발 잘하는 사람 TOP3에 항상 있다."
라고 말씀하신다.
저는 그때 열심히 한 거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물으면
"내가 설계한 화면 개발자들이 개발하면 소스를 한 번씩 보는 스타일인데 책임님이 개발한 건 구멍이 없어요. 일부러 오류 내려고 해도 다 막혀 있는 거 보고 진짜 꼼꼼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
개발하는 속도도 빨라, 근데 구멍은 없어 진짜 인정 인정"
부장님에게 나는 개발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시고, 인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가끔 다른 프로젝트를 하다가 힘들어서 연락을 해도 전화로 상담도 해주시고 나보다 13살 많으신 부장님을 정말 인생 선배로서 존경하게 되었다.
가끔 연락해서 부장님을 만나서 식사를 하다 보니 TOP3라고 했는데 나머지 분들이 누군지 순간 궁금해졌다.
"부장님 제가 TOP3라고 하셨는데 나머지 두 분은 누구예요??"라고 여쭤보니
TOP1은 그 당시 같이 프로젝트했던 책임님 한 분을 말씀하셨다. 나와 업무 영역이 틀려서 겪어보진 못했지만 이분은 개발 로직을 정말 잘 짜는 분이라고 하셨다.
말씀 그대로 복잡한 프로세스 개발을 잘하는 분이라고 하셨다.
TOP2는 고졸이라 대기업 프로젝트엔 같이 못하지만, 개발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근데 제가 그다음이라고요?라고 재차 여쭤봐도.
부장님 기준에선 그렇다고 하신다.
부장님은 프로젝트를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위에 언급한 TOP1책임님 또는 부장님 한분 해서 둘, 셋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투입하시는 편이었다.
나도 같이 데리고 다니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 당시 나는 계약 회사와 별 다른 트러블도 없는데 옮기고 싶지 않았다.
작년(2024년) 정부에서 R&D예산 삭감으로 인해 진행 중인 대기업 프로젝트가 너무 없었다.
경기도 안 좋은데 이전 프로젝트가 2023년 12월까지 하고 철수를 하여 연말, 연초 시점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거의 없었다.
이전 프로젝트 때 매일 9시 넘게 야근을 해서 그런지 오른쪽 뒷목과 오른쪽 팔 전체가 저려오는 증상이 있어서 이 참에 푹 쉬려고 마음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을 푹 쉬게 되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오른쪽 뒷목 통증과 오른쪽 팔이 저려오는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역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을 푹 쉬고 나니 두 달째 되어가는 즈음 점점 불안감이 쌓여만 갔다.
개발 프리랜서는 공실이 생기면 말 그대로 백수나 다름없다.
수입이 0원이다. 한 달은 몸이 안 좋아서 넘긴다 쳐도 두 달, 세 달이 돼버리면 당장 집안 카드값부터 메꾸려면 예금을 깨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5년간 같이 했던 업체 이사님과 다툼이 있었다.
요즘 프로젝트가 없다며, 예전에 대판 싸웠던 그곳으로 다시 가라고 하셔서 거기서 얼마나 개무시당하고 힘들었는데 거길 제가 왜 가냐고 따지니 나보고 신뢰가 없다고 하셨다.
5년간 남들보다 한 달에 50만 원 적게 받았는데 나보고 신뢰가 없단다.
5년(60개월) 50만 원을 곱하면 3천만 원을 못 받는 거나 다름없는데,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계속 같이 해주니 어항 속 물고기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업체와 이별을 했다.
두 달째 놀던 시점 인맥을 동원해서 여기저기 자리가 있는지 수소문을 했다.
6개 프로젝트에 프로필을 넣었는데 깜깜무소식이다.
그러던 중 부장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ㅇㅇㅇ 책임 알지? 그때 우리 프로젝트할 때 있었던 분, 내가 한번 잘 얘기해 볼게"
5년 전 프로젝트가 정말 소문날 정도로 극악의 프로젝트라고 소문이 자자 했던 프로젝트여서 거기 프로젝트에서 개발했다고 하면 좋게 봐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부장님 추천으로 인터뷰(면접)를 봐서 투입되어 현재까지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업무가 개발이 아닌 SAP 쪽 모듈이라 맨땅에 헤딩하며 억척스럽게 버티고 있다.
현재는 부장님께선 철수를 하셔서 다른 프로젝트에 계시지만 그 이후로도 3달에 한 번은 만나서 술 한잔을 하고 있다.
요즘 부장님께선 "여기서 너무 기여하지 말고 빨리 나와"라고 하시지만 요즘도 정말 갈만한 프로젝트가 없다.
나중에 타이밍이 잘 맞으면 부장님과 함께 다시 개발해보고 싶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내 자존감을 올려주는 것 같았다.
지치고 힘들 때에도 부장님께 연락하면 "니 탓이 아닌데 왜 힘들어해?" 하시며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나에게 용기를 주시고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어주신 부장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