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 일병

by 바라 봄

어느덧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전히 찌질하던 일병 시절로 렛츠 고!




일병으로 진급하고 나서 신기하게도 이등병 때처럼 억울하게 맞는 일이 사라졌다. 조금 숨통이 틔이고 오래간만에 여자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여자친구가 대뜸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 xxx 알지?!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이러면서 화를 냈다. 나는 순간 "음?! xxx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친구인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군대 가기 전 그 친구가 가로본능 핸드폰을 새로 사서 반 친구들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내가 군대를 가고, 그 친구가 핸드폰 배경을 나와 찍은 사진으로 해놓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거를 여자친구 친구와 언급되었던 그 친구와도 친구던 애가,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고 여자친구에게 얘기를 해서 오해가 생겼다. 나는 오해니까 당연히 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이미 같은 반 친구와 사귀는 사이였고 왜 배경화면을 나랑 찍은 사진으로 해놓았는지 알고 싶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일병 휴가를 나와서 여자친구와 만났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여자친구가 서글프게 울더니 "넌 이미 신뢰를 잃었어. 헤어지자"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느꼈다. 사실 군대 가기 전에 헤어지고 갈 생각도 있었다. 2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매일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알겠다고 했다. 이렇게 내 인생 첫 연애가 끝나고 휴가 남은 기간 내내 울면서 술만 퍼마시다가 휴가 복귀를 하였다. 복귀와 동시에 나는 새로운 타이틀을 받았다. "보호 관심 병사" 그 당시 여자친구가 헤어지고 자살하는 사건이 많이 있을 때였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헤어지면 무조건 "보호 관심 병사"로 지정되고 계속 분대장이 중대장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를 해야 했다. 이렇게 나의 일병 생활도 삐걱거리고 있었다.


일병 휴가 내내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몸무게가 6kg이나 쪄서 들어갔다. 주말에 항상 축구를 하는데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취미였다. 축구를 하던 중 수송소대 선임들이 살쪄서 느린 거 보라며 몇 대를 맞은 지 모르겠다. 보통 다른 소대는 안 건드리는 게 분문율이었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렇다고 제가 살쪄서 축구하는데 동작이 굼떠서 맞았다고 분대장한테 보고하는 것도 찌질해 보여서 참았다.


왜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길까. 어느 날 식당에 반찬으로 새우볶음이 나왔다.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절대 먹으면 안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새우볶음을 건너뛰었다. 그 순간 본부소대 급양관리하는 병장이 "야 xxx! 쳐 돌았냐"며 갈구기 시작했다. "제가 알레르기가 있습니다!"라고 하니 "개소리 말고 쳐 먹어!"라며 새우볶음을 식판 넘치게 부어줬다. 어쩔 수가 없었다. 새우볶음을 우걱우걱 먹고 나니 아랫입술 윗입술이 퉁퉁 붓고 혓바닥과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계속 컥컥거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기관지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갈 정도면, 정말 재수 없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정말 위험한 짓이란 걸 늦게 알게 되었다. 식사 후에 본부중대 병장이 우리 소대에 와서 "야 미안하다. 이 정도 일 줄을 몰랐다. 진짜 미안해. 앞으로 전달사항으로 남겨놓을 테니까 새우나 게 나오면 먹지 마"라고 했다. 그래도 병장은 곧 하늘인데 병장이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용서가 되었다.




일병이 되고 본격적으로 인사 사병계 업무를 하게 되었다. 병사관리에 모든 업무라고 보면 편하다. 대대 신병 받는 일, 다른 업무들 등등 군대는 모든 게 명령을 근거로 진행하기 때문에 일정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알파, 브라보, 차리, 본부 포대 행정병이 명령들을 대대에 올리면 그걸 근거로 취합해서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너무 자세히 서술하기엔 조심스럽다. 사병계는 비밀취급인가 3급을 부여받는다. 내가 대대신병 때를 기억하는 것도 내 업무가 대대 신병을 데리고 와서 대대장님 전입신고 전까지 데리고 다니다가 포대가 정해지면 자대로 보내는 일도 업무에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일정은 무조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일이 있으면 야근을 해야 했다. 여름 일과 때는 새벽 4시까지 일하고 6시 반에 일어나서 다시 일을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직을 서고 근무 취침도 못하고 대대신병을 받으러 간 적도 부지기수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소대 사람들도 똑같았다. 새벽까지 야근해도 근무 취침 따위 없었다. 그러던 중 국방일보에서 어디 부대 작전서기병 두 명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했다는 사건 이후로 야근을 하면 야근한 만큼 근무 취침이 생겼다.


이등병 때 항상 다짐했던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처음으로 실행에 옮겼다. 대대신병이 오면 대대장님 전입신고 준비를 할 때 항상 정비실에 따로 불러서 정신 차리게 혼을 냈다. 하지만 폭행 구타는 절대 안 했다. 어떤 이유에서도 때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소리 조금만 크게 해" 이 한마디면 다 잘한다. 이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상급 부대인 여단 부관과(인사과) 사병계원이 나보다 두 달 선임이었는데 부대가 다르니 그냥 아저씨였다. 여단 사병계원이 계속 여단으로 올라오라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은 적이 많다. 막상 올라가면 "커피 마시러 가요~" 이러면서 커피 한잔에 담배를 피곤했다. 심심해서 자꾸 부르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던 와중에 "아! 저 예전 사수가 뭐 서류 세 개를 잃어버렸다던데.."라고 말을 하니 여단 사병계가 정색을 하더니 "아.. 그거 한 장 잃어버릴 때마다 14박 15일 영창 가셔야 해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당황해서 담배를 피우다가 입술에 붙어서 손가락 치지직 화상을 입는 것도 모른 채로 "네?! 진짜요?!?!" 여단 사병계가 "아마 그럴 거예요. 진짜 큰일이네요."라고 말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대로 내려와서 벤치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여태 모진 구타와 가혹행위도 다 참아 왔는데 이거 때문에 영창을 가게 생겼구나. 동기들 전역할 때 나는 한 달 반을 더 있어야 되겠구나" 생각하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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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뭐야 뭐야 뭔 소리야" 이러면서 본부소대 행정병이었던 병장님이 먼저 와 주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서 주시며 "야 진정해 무슨 일이야"라고 하셨다.

우리 소대는 본부소대랑 사이가 많이 안 좋았다. 항상 일정상 포대 행정병들을 쪼아야 하는 입장이라 본부소대 행정병들은 우리 소대를 극도로 싫어했다. 신기하게도 나를 좋게 봐주셨던 기억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이건 너네과 간부들이랑 상의할 문제지 네가 독박 쓸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하셨고 나는 울음을 그치고 바로 인사과로 가서 인사기록관님께 얘기를 했다. 인사기록관님은 "아놔 신병장 이 새끼 시한폭탄을 세 개나 두고 나갔네?! 흠.." 하시며 고민에 빠지셨다. 잃어버린 서류는 앞에 글에서도 계속 언급된 노란색 종이 병적기록표였다. 누군가 입대를 어디서 해서 후반기를 어디서 받고 부대는 어디로 갔는지 모든 행적이 적혀 있는 서류이다. 전역 명령 시 반드시 상급부대로 보내야 하는 문서다. 인사기록관님은 "정신 똑바로 차려! 니 남은 군생활이 걸려 있어!" 하시며 자리를 비우셨다. 잠시 어디를 갔다 오시더니 노란색 전지를 여러 장 사 오셨다. 그러더니 인사기록관님이 "칸 간격 센티 오차 없이 그대로 만들어, 양면 출력해야 하고 뭐 데이터는 이미 있으니 잘 만들어서 잘 뽑으면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이렇게 오차 하나 없이 만들여서 양면으로 출력하고 계속 접었다 폈다 사용감 있게 만들고, 부대 직인은 지우개로 똑같이 만들어서 완벽하게 서류 3장을 만들었다. 데이터 보고 똑같이 만들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거의 완벽 그 자체였다. 이렇게 내 군생활에서 최대 위기를 정면 돌파하게 되었다.




일병은 일 많이 하는 병사라고 했던가 사병계 별개로 재밌는 보직들을 맡게 되었다. 첫 번째 깍새라고 불리는 이발병이다. 이등병 때 두발 정리를 하러 정비실에 가면 이발병 병장이 머리끄덩이를 흔들면서 가위로 머리를 빡 치며 "이제 이 대가리는 내 거야"라고 했었는데 이게 나에겐 "아.. 병 x같지만 멋있어"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렇게 이발병을 시작하게 되었다. 적어도 머리끄덩이를 잡고 가위로 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둥글게 둥글게 이발기질 하고 가위로 동그랗게 머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 가끔 말년 병장 휴가 전 머리를 자를 때 손을 덜덜덜 떨면서 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대대기수였다. 우리는 여단 안에 있는 부대여서 여단 행사를 자주 참여 했다. 분열을 많이 했었는데 통신소대 상병이 대대기수였는데 빨간 머플러에 k1소총을 각개 메어하고 하얀 장갑을 끼고 대대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부사수를 뽑는다고 하여 바로 신청을 했다. 키가 181이라 간당간당 하지만 대대기수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일병 6개월이 지나고 상병을 달자마자 분대장이 돼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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