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 이등병

by 바라 봄

20년이나 지났지만 가끔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눈을 감으면 이등병 때가 생각난다. 폭행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 시기,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빨래 건조대에서 쪼그려 앉아서 울고, 쓰레기 소각장 앞에서 담배 필터를 부러트리고 반대로 피면서 지독한 연기를 품으며 울분을 참고 눈물을 삼키던 생각이 난다. 이등병 시절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로 돌아가보자.




이렇게 본부포대 내에서 침구류도 안 개고 없어져버린 폐급 쓰레기로 눈도장을 찍고, 대대장님께 전입신고 연습을 했다. 이때 진짜 자대에 왔구나 많이 느끼게 되었다. 인사과 계원 일병이 정비실로 데려가서 전입신고 연습을 계속 시키면서 정신 안 차리냐고 밀치고 전투화로 조인트만 세 번이나 까였다. 대대장님께 전입신고를 드리고 대대장님이 따뜻한 콜라맛이 나는 차를 주셔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대대장 전입신고를 하고 인사과로 다시 돌아왔다.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한컴타자 600타 이상이었다. 예전에 워드 1급 실기를 한번 떨어져서 충격을 받아서 타자 연습을 열심히 한 게 군대에서 통하다니 참 신기했다. 이렇게 650타 정도를 치고 나는 인사과 계원으로 착출 되었다.


대대신병으로 왔을 때 인사과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인사과 계원이 되니 다시 보였다. 대위 계급은 장교는 인사장교님이고, 상사 계급의 부사관님은 인사담당관님이셨고, 하사 계급의 부사관님은 인사기록관님이셨다.


그리고 인사 행정병은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 문서작업에 특화되어 있는 서무계, 병사관리를 하는 사병계, 그리고 병사들의 돈을 지급하는 경리계였다. 대대장 전입신고 때 난리 쳤던 선임은 경리계였다. 지난 새벽에 나에게 부사수를 권하던 말년 병장은 사병계였다. 이렇게 나는 대대 인사행정병 사병계원이 되었다.




본부중대로 내려가서 중대장님께 전입신고를 하고 참모소대에 짐을 풀었다. 참모소대는 대대 행정병들의 소대였다. 인사과, 군수과, 정보과, 작전과, 그리고 대대장 당번병, 대대장 1호차 운전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입대 전에 복학생 형님들이 하던 얘기가 순간 생각이 났다. "몸이 힘드면 군생활은 편하고 몸이 편하면 군생활이 힘들다"였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고 소대 분위기는 정말 살벌했다. 나보다 한 달 선임은 방독면을 쓴 상태로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본격적인 이등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대배치를 받아 신병으로 오면 대기기간 2주 동안 선임이 계속 이등병을 데리고 다닌다. 나는 참 운이 없었다. 대기기간에 혹한기 훈련을 가게 되었다. 참모소대 임무 중에 지휘통제실 60인용 텐트를 쳐야 하는데 설명 하나 없이 그저 선임들이 그저 화만내고 갈구기만 했다. 텐트를 지던중 우리 소대 나를 포함한 이등병 세명은 용마루, 용마루 지줏대를 구분을 못해서 허둥지둥하는 상황에서 상병 선임이 욕을 하면서 하이바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 "야 xxx야 정신 안 차려?! 쾅! 쾅! 쾅!" 맞는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억울해서가 아니다.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나보다 한 달 선임은 밥도 못 먹게 했다.


혹한기 훈련 첫날 화가 치밀어 올라서 잠이 안 왔다. "태어나서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맞은 적이 있던가"란 생각에 뒤척이다가 다들 잠이든 상태에서 하이바를 들고일어나서 그 때린 상병 앞에서 계속 고민했다.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나서 단념을 하고 다시 누웠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걸 몰랐다.


훈련 중에 우리 소대 말년병장이 어디 덮을 일이 있다고 내 판초우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다.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우리 소대에 병장이 네 명이 있었다. 기상나팔이 들리자마자 이등병인 나는 내 침구류를 정리하고 바로 병장들 침구류를 정리했다. 침구류 정리를 하겠다고 하면 병장들은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나는 침구류를 빠르게 정리하고 화장실에 뛰어가서 빠르게 씻고 소변기에서 소변을 보면서 잠시 눈감는 게 유일한 낙이였다. 씻고 바로 마대자루에 물을 묻혀서 내무실로 가져가야 했다. 마대자루는 일병 급이 바닥을 닦았다.


잘 때 코 고는 습관 때문에 제일 많이 맞은 것 같다. 잠깐이라도 코 고는 소리가 나면 네 달 선임인 일병이 와서 싸대기를 때리고 갔다. 아예 내 옆 간물대로 이동해서 조금이라고 코를 골면 "퍽!"하고 안면에 뻥튀기를 맞았다. 그래서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긴장하며 자기 시작하면서 잘 때 맞는 일은 점점 줄여 들었다. 반면에 나의 한 달 선임은 잘 고쳐지지 않는지 자다가 방독면도 씌우고 매일 맞는 일상이었다.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취침점호 전에 말년병장이 "뭐 할 말 없냐? 심심한데 한 명씩 말 좀 해봐"라는 말에 나는 개념도 없이 "제 판초우의 주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말년병장이 웃으면서 정색하더니 내리 갈굼이 시작되었다. 나도 참 개념이 없었다. 보급품을 분실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말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다가 말을 한 건데, 여기서 내리 갈굼이 시작되었다. 내리 갈굼이 무서운 게 점점 밑으로 내려올수록 말보단 폭행이 먼저가 되었다. 나로 인해 상병 계급부터 일병들에게 폭행이 시작됐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말년병장이 "그만, 그만해"이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개인정비 시간에 매일 우리 소대 작전서기병인 일병 선임 두 명이 날 창고로 불렀다. 이유가 없다. 창고에 들어가면 그저 싸대기를 맞든 발로 차이든 조인트를 까이든 했었다. 한 달 정도 이유 없이 맞으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부모님 생각이고 뭐고 이러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오늘은 뒤집어엎자.."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입대 전까지 3년 동안 태권도 선수부를 하면서 매일 겨루기만 한 나에겐 두 명 정도는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고에 들어서면서 일병 선임 두 명에게 말을 했다. "왜 때리는지 이유나 좀 압시다."라고 하니 대답이 어이가 없었다. "인천 사람이잖아.." "잘..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하니 "너 임병장이랑 같은 인천사람이잖아"라고 했다. "그런 이유라면 그만하십시오.."하고 박차고 나왔다. 우리 소대 말년병장 악의 축이 임병장이고 작전서기병이었다. 지휘통제실에서 임병장에게 갈굼 당하고 맞은걸 밤에 나에게 풀었던 것이다. 그 이후론 날 창고로 부르는 일은 없었다. 내가 상병쯤 되었을 때 병장이 된 일병 선임이었던 두 명한테 그때를 물어보니 "너 그때 이미 눈빛이 돌아 있었어. 그리고 그때는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했다."란 말을 들었다. 임병장이 전역하고 나서 그 두 명의 선임은 천사 그 자체였다. 사람의 결 자체가 선하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미안했어"란 말을 항상 나에게 해줬었다.


인사과 행정업무 중 공통적인 업무는 기안문 작성이다. 대대 행정병 공통 업무라고 보면 된다. 인사장교님 이기안문 초안을 주시면 그대로 작성해야 한다. 그 당시 한글 97을 사용했었는데 상병 선임(서무계)이 뜬금없이 기안문을 주더니 "똑같이 타이핑하는데 30분 준다."이러더니 마우스를 뽑아 가져가면서 나갔다. 순간 급 당황하면서 수단 방법 안 가리고 30분 안에 해야 한다란 생각에 미친 듯이 타이핑을 했다. 마우스가 없어도 텐키로 마우스 커서를 이동해서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했지만 본문은 다 치고 타이틀 네모를 만드는 법을 몰라서 헤매던 와중에 30분이 경과되자마자 뒤에서 싸대기가 날아왔다. 잘못 맞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좀.. 한 번이라도 알려주고 때려라 이 미친놈들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했다.


인사과 사병계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 정말 대충대충 받고 전역할 때 "내가 내 실수로 세명 서류를 잃어버렸어. 뭐 알고 있어 하하"하고 전역을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


소대에서 상병 선임 중에 자기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밑에 애들에게 화풀이하는 선임이 있었다. 그냥 쌩트집을 잡아서 갈궜다. 안경 낀 사람 안경알이 더러우면 "니 눈깔 자체가 더러운 거야"라면서 심하게 갈구고 누가 봐도 화풀이였다. 나중에 이 상병 선임이 분대장이 되고 나서는 더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다짐한 게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자,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계속 생각했다.


어느 날 부모님과 누나가 면회를 왔다. 어머니께서 싸 오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는 부대로 들어갔다. 나중에 누나에게 들은 얘기지만 집에 가는 내내 어머니께서 우셨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반쪽이 아니라 우리 아들 얼굴이 아예 없어져 보였다고 군 생활이 힘든가 보다라고, 참 신기하다 항상 어머니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매일 맞던 하루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나의 한 달 선임은 달랐다. 나의 하루는 조금씩 나아져 가는데 그 선임의 하루는 항상 똑같았다.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혼나고 자기 전에 혼나고 자는 중에도 혼이 났다. 고문관 역할을 하던 중 군수과 일을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며 보직을 바꾸며 측지소대로 가게 되었다. 그날 전투화를 닦으러 나가서 한 달 선임이 "나 담배 하나만 줄 수 있어?"라고 하며 손을 부르르 떨면서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담배가 이런 맛이구나.. 씁.. 쓰다" 다 큰 남자가 그래도 후임 앞이라고 우는 모습을 안 보이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이렇게 내 맞선임은 측지소대로 넘어갔다. 과연 일을 못했을까? 절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상병 때 서로 분대장을 달고 소대를 운영하는 거 보면 고문관이 절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다짐했다. "나중에 내가 상병 병장이 되면 절대 폭행 구타는 없다."

"혼낼 일이 생기면 적어도 충분히 알려주고 혼내자",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자" 적어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느낀 것들은 절대 하지 않는 거였다.


참 신기한 게 그 악마 같은 인간들도 병장을 달면 바로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마치 속세에서 벗어난 거 마냥 사람이 착해진다. 예외였던 인간은 임병장 그 사람이었다. 말년까지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TMI지만 전역할 때 나에게 "너 거기 대학 다닌다며?! 나 나중에 거기 비서과 갈 거야. 그때 보자?!"라고 했었는데 실제로 복학해서 도서관에서 만난 적이 있다. 너무 반갑게 아는 척을 하길래 귓속말로 "아는 척하지 마세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부대마다 틀리겠지만 우리 중대의 폭행 구타는 04년 6월 군번까지만 당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싫었다. "처맞고 자란 애들은 쳐 맞아도 돼" 맞고 자란 애들은 상병이 되어도 때렸었다. 어떻게 사람을 때리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할까, 빨리 윗 계급 쓰레기들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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