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각 시대에 있어서 사상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 헤겔이 살아있다면 미니멀리즘도 현시대의 철학이라고 하진 않았을까요. 먹고살만한 사회에서, 고급지게 표현하면 물질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지는 우리 시대 질문이고 미니멀리즘은 하나의 사상이라고 말하겠어요. 분명 물질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지만 완성시키지 못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인간은 정신적 진화를 경험한다고 하죠.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부분의 독자분들은 1단계인 생리적, 의식주 욕구와 2단계인 안정감, 안전의 욕구를 넘어서 3단계인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단계를 넘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아존중, 너 나아가 자아실현 단계에서나 미니멀리즘을 갈망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우선순위가 각자 달라 이상적인 미니멀리즘도 모두 다릅니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 가지고 있는 생각이 타인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가치 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에요.
그러니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Taryn Williford의 칼럼 <These Are The 6 Types of Minimalists. Which One Are You?>은 흥미로웠습니다. 2017년도 내용이라 구식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비교적 미니멀리스트의 전범위를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을 구분했으며 구체적으로는 근본주의 미니멀리스트 (Essential Minimalist), 경험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스트 (Experiential minimalists), 환경 보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 (Sustainable minimalists), 아나바다형 미니멀리스트 (Thrifty minimalists), 내면이 행복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 (Mindful minimalists), 심미주의 미니멀리스트 (Aesthetic minimalist)로 나눴습니다. 내용을 살펴만 봐도 미니멀리스트는 물건을 극단적으로 적게 소유하거나 소비 자체를 지양하지 않음을 말해주죠.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사냐는데 있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사는가
첫 번째로는 근본주의 미니멀리스트입니다. 필요한 것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리는 행동 양식을 실천합니다. '필요한 것’이란 표현에서 분명 주관성이 논쟁이 있겠지만 법정 스님이 말하신 ‘무소유’에 가까운 삶으로 치환하면 조금 더 이해가 편안하지 않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한 여행 가이드 유튜버는 냉장고, 수건, 헤어 드라이어기 등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옷 20벌과 양말 몇 켤레를 소유하고 있으며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에코백 하나를 들고 완주했다고 합니다. 그의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생명 유치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구입하지도 않아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에 반해 필요한 IT 용품이나 옷을 교체할 때는 돈에 관계없이 기능과 심미안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선택하시더라고요. 이와 같이 근본주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최소한의 소유를 추구하고 가능한 최선의 제품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경험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 경주에서 부산으로 남편과 드라이브를 갔을 때 일입니다. 저 멀리서 몸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부산'이란 팻말을 들고 있던 여행자 2명을 보곤 차에 태운 적이 있습니다. 부산까지 가는 길에 그들은 본인들이 남미에서 온 세계 여행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집을 떠나고 한 보험회사의 스폰서를 받으며 장작 3년째 전 세계를 배낭 하나만 들고 여행하는 중이며 직전에는 러시아를 방문했다더군요. 제가 만난 두 사람은 사무실의 삶에 갇히느니 길거리에서 자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말했습니다. 모든 짐을 백팩 하나에 넣은 채 말이에요. 이처럼 백패커나 디지털 노매드로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백팩과 케리어 등에 필요한 물건을 보관한다고 하니 물질은 수단에 불과함을 새삼 느낍니다.
환경보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저의 지향점이기도 하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레스 웨이스트(Less Waste), 플라스틱 프리 (Plastic Free)를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이 실천하는 종류의 미니멀리즘입니다. 가능한 지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의 소비하지 않고 친환경 제품으로 대체하려 하죠.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 쓰거나 다시 쓰는 등 자급자족형이 많다고 합니다.
혹시, 아나바다 기억하시나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캠페인 있었잖아요. 요즘에는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과 같이 비즈니스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아나바다형 미니멀리스트는 돈을 쓰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 물건을 사는 것도 돈이 아깝고 물건을 버리기도 아까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쓰다 버린 가구, 용품 등을 가져와 쓸만한 것으로 고쳐 쓰는 아주 대단한 손기술도 가지고 있죠.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자궁 근종을 겪고 난 이후였습니다. 환경오염 문제를 인식하고 돈으로도 지울 수 없는 건강 문제가 들이닥치니 '과연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자궁 근종이란 사소한 질병은 ‘죽음’까지도 사색하게 만들었죠. 비슷한 맥락일지는 모르나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 역시 물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내면에서 얻는 행복, 삶의 만족도를 우선순위로 두며 옷걸이 하나를 사더라도 '옷걸이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오로지 심미안을 추구하는 유형의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인테리어 가구나 용품을 파는 회사에서 홍보용 이미지로 많이 사용하는 갈색 나무 소재의 가구들, 하얀 벽지, 리넨 등의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그저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선호해 최소한의 색, 면, 선이 있는 소품을 소유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Aesthetic minimalists라고 칭하는 이들은 물질의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염원하기보다는 심미안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이들 같아 건축, 인테리어, 패션의 한 장르로 가지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 내용은 미니멀리스트의 6가지 유형이라는 제목의 2017년도 칼럼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https://www.apartmenttherapy.com/these-are-the-6-types-of-minimalists-which-one-are-you-25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