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로 미니멀 라이프라던데, 너무 미니멀 아이가?'
하다 못해, 친정어머니도 놀라는 저희 집 거실입니다. 결혼 3년 차인 신혼집 치고는 너무 휑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하얀색 작은 철제 서랍장, 책을 읽는 소파, 커피 테이블 외 자잘한 소품을 제외하곤 물건이 많지 않아요. 다른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방에도 정말 침대와 서랍장, 작은 테이블이 전부입니다. 누가 사지 말라고 시킨 것도, 거창한 책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어서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거실을 꾸민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도 여행지에서 보이는 예쁜 빈티지 장식품을 집 안 거실장에 들여놓고 싶을 때가 수 없이 많아요. 일본 여행에서 보았던 화려한 도자기 액자와 태국 여행에서 소장 욕구를 불질렀던 금빛의 다기 세트가 여전히 제 마음 한 구석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떠나지 않는걸요. 그럼요! 저 역시도 누군가의 수집품 전시장처럼 거실장을 채우는 예쁜 소품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심미적 만족감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것뿐이 아니에요.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꿔주는 기능적 편리함을 이야기하는 물건들이 개인 SNS에 등장할 때마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온몸의 세포들이 반짝반짝 반응합니다.
생존을 위한 먹을 것과 물건들을 모우며 살아왔던 인류의 DNA가 유전자에 아직 남아있는 까닭일까요. 먹고 마실 것이 풍족한 21세기의 사람들은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렵 , 채집 활동을 하지 않지만 때로는 편리함을 위해서 다이소에서 물건을 털어오기도 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단지 거실에 놓아둘 도자기를 사기도 하죠. 그렇게 돈이란 재화를 이용하여 21세기에 적합한 생존 방법을 모색합니다. 기업의 마케팅은 단지 이런 인간의 본능을 (나쁘게 혹은 좋게) 이용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물건을 모우는 활동을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 어려운 이사가 죽기만큼 싫습니다. IMF와 맞물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온 가족이 몇 번 이사했습니다. 20살이 넘었을 즈음에는 이 지겨운 이사가 멈추나 싶었는데 왠걸인가요. 대학 시절부터 사회에 나와서까지 자취방과 기숙사 짐을 적게는 4개월에서 1년에 한 번식 옮겨야만 했던, 선택이 아닌 필수의 경험이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물건을 많이 모았다면 이사 과정에 쏟을 수밖에 없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다는 걸 의미했어요. 물건을 모으고 다시 버리고, 모으고 다시 버리며 쌓인 쓰레기봉투에는 추억과 돈이 허망하게 담겨 버려졌습니다. 말이 길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물건을 모우는 기쁨보다 아까웠어요. 그러니 물건을 사 모우는 데 큰 취미도 없고 집착도 없습니다. 유전적 DNA를 누를 만큼 강력한 환경의 압박에 따른 진화랄까요? 다른 집에 비해서도 부족해 보일 만큼 가구와 소품이 없는 데에는 이런 개인적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에도 신혼 살람이라고 할 것을 사지 않았어요. 남편이 사용하던 냉장고를 가져오고 책 읽기 좋은 소파와 의자를 조금 샀을 뿐입니다.
안 그래도 이렇게 물건 모우는 데 취미가 없는 제가 자궁 근종까지 생겨버렸으니 어떻겠습니까. 가공 처리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물건들이 주변에 많으면 많을수록 유해 물질에 노출될 확률도 늘 수 있다는 자료들을 명치에 치일 만큼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나요? 마음에 드는 화병을 하나 산다고 해도 공정 과정에서 생긴 미세 물질이 부드러운 화병의 곡선 표면에 묻어 있다 언제 피부와 입으로 들어갈지 모릅니다. 화병이 깨지지 않게 감싸주었던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포장제, 종이 박스는 결국 버려져 수십 년, 수백년을 땅 속에 있을지 모르죠. 고작, 화병 하나를 산다 해도 너무나 많은 세상의 구성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기회비용을 비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소유'한다는 개념과는 자연스럽게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플라스틱 생필품부터 소품, 가구 등 굳이 가까이하지 않아도 괜찮을 녀석들을 고민할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의 방식은 '다시는 안 살 거야!'가 아닌 '너(물건)와 나의 거리를 좁히고 싶지만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너(물건)를 가까이 두지 않을 거야.'입니다.
소유와 적당한 거리두기
그래서 불편하냐고요? 전혀 안 불편해요! 불편하다는 인식이 오히려 불편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일상을 떠올리면 공간마다 가지는 활동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어요. 24시간, 하루를 쪼개 보면 밖에서 일을 보통 6시간, 잠은 8시간, 화장실은 1시간, 주방에서 2시간 정도를 보냅니다. 이를 중요도로 보면 저에겐 잠을 자는 공간인 안방이 가장 편안해야 할 터이지만 이 마저도 잠에 들면 모르니 주방이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쨌든 남들의 기준이 아닌 제 생활의 우선순위를 고민해보면 공간을 물건으로 채우는 데 큰 의미가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남들이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생활 패턴에 알맞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일상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물건들, 예컨대 노트북(일을 하고 먹고살다 보니 하루 시간의 50% 이상을 붙어있습니다.) 같은 21세기형 생존 도구를 소유하는데 중요도를 부여합니다.
불편하다는 인식이 오히려 불편을 만든다.
그로 인한 얻는 개인적 장점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봄햇살, 여름 바람, 가을 낙엽 잎, 겨울 한기와 같은 계절적 변화, 자연적 경이로움을 보다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남편과의 대화가 더 많아졌습니다. 시야를 가로막거나 촉각과 후각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없으니 삶에서 한정적이며 유한한 것들의 가치가 잘 느껴집니다.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적게 생기고 이사에 대한 걱정이 적어졌습니다. 마음 놓고 어디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 그리고 제 자궁에도 조금 면이 섰어요. 유해 물질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될 테니까요.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가 넷플릭스에서 상영되고 '미니멀 라이프'와 '물건 정리'같은 주제들의 콘텐츠들이 유행처럼 세상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소유에 대한 인식이 다양화될 수 있다는 점에선 매우 좋겠지만 무작정 버리라는 극단적인 조언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버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할까? 저는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버리는 것보다 소유하지 않는 습관이 삶을 더 촘촘하게 채워주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을 채웠던 것들이 하나씩 정리될 거라고 믿습니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