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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입니다 Mar 27. 2020

동굴 문턱에 기대서서

프롤로그

2020년 03월 27일 금요일 

맑음. 눈이 부시게.

기록자 : 뽈     


모르겠다. 뭐부터 써야 할지. 

쓸 얘기가 한없이 많은 것 같다가도 전부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량없이 느려서 괴롭고 그러나 쏜살같아서 괴롭고 더없이 아득해서 괴로운 이 수형의 시간 속에서, 무얼 건져 올려다 말해야 하는가.

그저께부터 줄곧 생각은 했다.

쓸 거야. 써야지. 써야 해. 생존일기 이야길 처음 꺼낸 게 너잖아. 뱉은 말에 책임을 져.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뱉고 또 책임져야 하나. 지금 기대선 이 동굴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동굴과 암흑


3월 21일. 

나는 동굴 안 깊숙한 곳에 모로 누워있었다. 원해서 제 발로 들어간 건 아니고 그냥 눈을 떴는데 동굴이었다. 뒤통수가 축축했고 몇 시인지 짐작할 수 없게 어둡고 서늘했다. 시각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열었더니 4시간 전에 보낸 것으로 되어있는 제임스의 메시지가 떴다.


어제 봐서 알겠지만 다시 한번 공지할게. 펍은 오늘부터 쭉... 문을 닫아.
So we won’t need you tonight. Stay healthy.


그랬지. 원래 오늘 밤 나는 자가격리 중인 기디언의 쉬프트를 대신하기로 했었는데, 어젯밤에 이미 실직자가 되고 말았지. 실직자가 됐다는 건 저들에게 내가 필요 없다는 말이고 필요 없어진 내겐 일이 없다는 말이므로 나는 이제 할 일이 없고, 그럼 몇 시인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거지. 휴대폰을 대충 던졌다. 물론 단단히 알고 있다. 순식간에 일자리를 모두 잃고 무일푼이 된 데에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아는 것으론 부족하다. 누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지? 천만에. 미안하지만 이런 경우 아는 것은 아무런 힘도 없다.


3월 20일자 석간신문 Evening Standard


내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것 역시 잘 알고 있어서다. 탓을 돌릴 표적이 없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 존재하지 않는 표적을 찾아 헤매다 실패한 자에게 남는 것이란 결국 처절한 자괴감과 자기혐오뿐이거든. 한국이 난리 중일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만있던 것에 대한 형벌이야. 그동안 뭘 했니, 왜 더 미리 대비하지 못했니, 어리석은 녀석. 이렇게 될 거란 걸 전혀 예상 못 한 건 아니잖아.

아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젠장할. 항변하려던 걸 그만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으려 기를 쓸수록, 아무거나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는 핀볼들처럼 아무렇게나 퉁겨다니면서. 나는 그중 예상이란 단어가 적힌 공을 몇 번이고 던졌다가 다시 붙잡길 반복했다. 맞아. 내 항변은 틀렸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짐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선명해진 건 아마도 그날부터. 아무래도 그 기분부터 이미 흉조였던 거지. 곧 모든 게 송두리째 전복될 줄 모르고 공연히 달떠서는 실실거렸던, 열흘 전 그 아침부터.


그래서 이제부터 써내려 갈 것은 이미 적신호를 보내오고 있던 상당수의 조짐을 애써 무시하다 예상의 절망적 실현을 넋 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지난 보름여에 관한 복기. 그리고 동굴의 문턱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 채 어떻게 먹고 자긴 하는 중인 반실직자 워홀러의 아주 무료한, 하품이 나올 만큼 무료하고 하품할 때 찔끔 나오는 눈물만큼 우스운 생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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