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 - 마나트 Manat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2015년 4월 한국을 방문해 현충원을 참배했다. 이 사실은 신문 국제면에 조금 언급됐을 뿐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겐 매우 생소한 나라다. 투르크메니스탄이 민족국가로 탄생한 것은 소련 덕분이다. 소련 이전의 러시아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침략하기 전에는 이 지역에 많은 카간국들이 있었는데, 이 카간국들은 민족보다 지역적 특성으로 등장한 나라들이다. 예를 들어, 현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에 있었던, 당시 히바 카간국(Khiva Khanate, 1511~1920)의 카간은 우즈베크족이지만 다민족 국가였다.
1917년 ‘10월혁명’으로 러시아에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1922년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면서 행정구역상 상당한 변화가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련은 투르키스탄과 주변의 작은 카간국들을 합병하고, 중앙아시아를 민족에 따라 다시 분리·조정했다. 1924년 소비에트 분할 정책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하고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이 탄생했다.
투르크메니스탄 화폐 ‘마나트’는 무슨 뜻?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통화이름으로 ‘마나트’(manat)를 사용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돌궐의 후손이므로 마나트를 투르크계 언어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20세기 초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마나트라는 단어의 뿌리는 러시아어로 ‘동전’이란 뜻을 지닌 ‘모네타’(moneta, монета)이다. 이 단어와 함께 영어로 ‘금전 또는 통화’를 의미하는 ‘머니터리’(monetary)나 ‘돈’을 뜻하는 ‘머니’(money)는 전부 고대로마의 여신 유노 모네타(Juno Moneta)의 이름에서 생긴 것이다.
코로울루, 독재자에 맞선 맹인의 아들
오늘날에도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은 자신들의 조상을 오구즈 카간국(Oghuz Khanate) 그리고 그 국가의 후손인 셀주크제국으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물론 투르크계 사람들은 아무리 넓은 지역에서 서로 먼 국가로 살고 있어도, 공통된 문화의식을 잃지 않고 있다. 투르크계 사람들의 의식이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있는 사례가 20마나트에 실린 인물인 코로울루다.
코로울루는 지금껏 그의 죽음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문학작품 속 가공인물인지, 실존인물인지 혹은 이 둘이 합쳐져 생긴 ‘합성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하다. 터키 역사에서 16세기 코로울루라는 시인이자 용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문학사에도 11세기경 코로울루라는 영웅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코로울루라고 불리던 인물은 공통적으로 아버지가 맹인이어서 그 이름이 ‘맹인의 아들’ 이라는 뜻을 내포한가는 것이라는 점과 언제나 독재자에 맞서는 용감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50마나트의 앞면에 있는 데데 코르쿠트(Dede Korkut, 투르크멘어로는 Gorgut Ata)를 보자. ‘데데’는 터키어로 ‘할아버지’다. 따라서 데데 코르쿠트는 ‘코르쿠트 할아버지’라는 의미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화폐 7종에 등장하는 인물 중 3명의 인적사항이 애매모호하다. 데데 코르쿠트 역시 투르크계 문화에서 공동체에게 올바른 길을 이끌어온 어르신을 상징하는 가공인물인지, 아니면 오구즈 사람들의 신화들을 모아서 구비문학을 발전시킨 현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재 여러 나라에 데데 코르쿠트의 무덤이 라고 알려진 장소들이 있다. 이는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실존 여부와 관계없이 얼마나 특별한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록문학의 선구자, 마그팀굴리 피라기
10마나트 앞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시인 마그팀굴리 피라기(Magtymguly Pyragy)다. 이 인물 역시 18세기에 출생한 정도만 알려졌을 뿐 출생 및 사망연도는 확실치 않다. 매년 투르크메니스탄 외교부는 마그팀굴리의 생일 기념 문학행사를 주최하는데, 2014년 290주년 기념행사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등의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이는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마그팀굴리 피라기의 출생년도를 1724년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마그팀굴리 피라기는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에 위치한 현재 이란 영토인 곤바데카부스(Gonbad-e Kavus)에서 태어났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유학 가 젊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 작했다. 그의 시에는 당시 일반국민의 언어습관이 담겨 있다. 이런 연유로 그는 ‘근대 투르크멘어 기록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투르크메니스탄 화폐 가운데 제일 고액권은 500마나트다. 한국 돈으로 17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이 화폐의 앞면에는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 1940 ~ 2006)초상화가 있다. 투르크멘 국민을 비롯해 투르크계 사람들은 그의 실제 이름보다 ‘투르크멘 사람들의 지도자’라는 뜻으로 ‘튀르크멘바시’(Tükmenbaşı)로 부르고 있다.
튀르크멘바시는 양면의 얼굴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레와 오페라금지령이다. 그는 “발레와 오페라가 정통 투르크멘 문화에 맞지 않는다”며 여자들의 발레와 오페라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이슬람 종교의 분위기가 강해 보이지만, 사실 그는 이슬람주의 중심으로 정치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턱수염도 금지시켰고, 자기가 직접 쓴 <루 흐나마>라는 책을 학교나 종교 장소 등에 필수도서로 비치토록 했다.
그는 자신이 심장수술 후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공직자 및 공공장소 흡연을 금지하고, 자신과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각 달의 이름을 새로 붙였다. 그가 했던 일들로 보면 좋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당시 상황을 감안·평가하면 달리 볼 수도 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의 바로 이런 평가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 국기를 보면 다섯 개의 표시가 있다. 그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다섯 씨족을 상징한다. 그런데 튀르크멘바시가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서로 싸우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저자 알파고 시나씨의 투르크메니스탄 화폐 탐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