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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pago Nov 04. 2016

브라질 화폐에 보이는 공화국으로 가는 길

브라질 - 헤알 Real

남미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난 나라는 아마도 브라질이다. 요즈음 지카바이러스든, 대통령 탄핵이든 많은 문제를 겪고 있는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세계의 10대 강대국 중에 하나다. 현재의 브라질 화폐를 살펴보면, 매우 이채로운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브라질 화폐들의 앞면은 모두 동일하게 하나의 동상 사진이 있다. 필자는 처음에 그 동상이 고대 로마제국의 신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곧 브라질 연방과 공화국 선언을 상징하는 가상의 초상화인 ‘공화국의 초상(Efígie da República)’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왕권 국가들의 화폐들을 보면 지폐에 현직 왕의 얼굴이 실려 있거나 일부 국가들에서는 그 나라 국부의 사진이 화폐에 실려 있다. 네팔화폐의 앞면에도 왕권 시대에는 왕의 초상화, 공화국이 선포되고 나서는 에베레스트 산의 사진이 실렸다. 즉, 어느 나라든 화폐 앞면에 있는 사진은 그 국가를 대표할 상징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화국의 초상’은 어떠한 계기로 브라질을 대표하게 된 걸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브라질의 식민지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브라질 제국 그리고 공화주의

1807년에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포르투갈 왕실은 그 당시 식민지 중 가장 면적이 크고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브라질로 피난을 떠났다. 1808년에는 마리아 1세가 포르투갈-브라질 연합 제국의 여황제로 즉위했다. 황실이 브라질에 머물면서 원래 포르투갈 이외에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수 없던 브라질은 스스로 개국을 했고,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815년에는 법을 개정해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위치가 동등하게 되었다. 1821년에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에서 철수하자, 마리아 1세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르기 위해 주앙 6세가 포르투갈로 돌아가면서 아들인 페드을 해체하고 브라질을 다시 식민지의 지위로 되돌리려고 하자 브라질 인들이 당연히 반발했다. 브라질 국민의 지지를 받은 페드로 1세가 브라질 제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초대 황제에 올랐다. 물론 포르투갈이 브라질의 독립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몇 차례 전쟁을 일으켰지만, 눈에 띌 만큼 치열한 독립 전쟁 사건은 없었다.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장기간 군주제가 유지된 국가다. 그렇다면 브라질 제국은 언제 브라질 공화국으로 진화했을까? 바로 이 질문의 답변과 브라질 화폐의 앞면에 있는 ‘공화국의 초상’의 배경이 여기서 서로 연결된다. 1831년에 제위를 계승한 페드로 2세는 현명한 치세로 브라질 발전의 기틀을 닦았고 관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부터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노예제도 전면적 폐지를 추진하면서 지주들의 큰 반발에 부딪쳤다. 게다가 이미 주변 국가들이 다 공화국이다 보니 브라질에서도 공화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결국 페드로 2세는 1889년에 큰 충돌 없이 공화주의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공화국의 초상’이 바로 이때쯤 등장했다. 브라질 군주제가 공화국으로 변화되면서 국민들의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렇다 보니 이 시기의 공화주의를 묘사하기 위해서 많은 예술적인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업이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인 마리안Marianne 상을 모방했다. 프리기아phrygien 모자를 쓰고, 머리에 월계수 잎을 건 여자의 모습이 ‘공화국의 초상’의 기본 디자인이 되었고, 이 심벌은 많은 곳에 활용되었다. 공화국이 선언된 후 발행되었던 일부 화폐 앞면에서 도 이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공화국의 초상’이 모든 화폐의 앞면에 실린 지 불과 20여 년 되었다. 브라질이 공화국 체제가 되었지만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한참 뒤에야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사실 1889년 공화국이 들어선 후 초창기에는 민주주의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에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제툴리우 바르가스(Getulio Vargas, 1882~1954)로 인해 브라질은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채 몇 십 년을 보내야했다.

민주공화국 천명

바르가스의 독재 체제는 1945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책 덕분에 막강한 지지 기반이 있었던 바르가스는 1951년에 민주적인 절차로 다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1954년에 발생한 경제 위기 때문에 강력한 퇴임 요구와 압력에 시달리다가 같은 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바르가스 시대가 정리되었지만, 1961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앙 굴라르트(Joao Goulart, 1918~1976) 역시 바르가스와 같은 정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책과 노선이 우익 세력과 군부를 자극했고, 바르가스를 퇴임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부가 이번에는 굴라르트를 퇴임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또 일으켰다. 굴라르트가 실각한 후 군부는 대통령 선출 방식을 직접선거제에서 간접선거제로 바꾸었다. 1985년에 군사정권이 끝나고, 1989년 직선제로 콜로르 데 멜로(Collor de Mello)가 첫 민선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1990년 이후부터 비로소 민주주의가 제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90년대 초기에 다시 국제사회에서 브라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풀어야 하는 당면 문제들 중 하나가 화폐였다. 오랜 기간 계속된 정치적 혼란 때문에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던 브라질의 화폐 가치는 당연하게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1992년에 실시한 화폐개혁으로 화폐의 가치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브라질 화폐는 1994년에 새롭게 발행되면서 등장했다. 1994년까지는 화폐 앞면에 여러 사람의 초상화가 실렸었다. 페드로 2세의 얼굴도 있었고, 바르가스의 사진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그리고 제대로 된 공화국 시대임을 천명하는 의미로 1994년부터 모든 화폐의 앞면은 ‘공화국의 초상’으로 통일되었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저자 알파고 시나씨의 브라질 화폐 탐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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