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 디나르 Dinar
최근들어 이라크와 시리아는 ISIS 혹은 IS와 연결되어 자주 언론에 노출된다. 이 두 나라는 역사 유적지가 많고, 자연경관이 뛰어나 여행 애호가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했던 나라들이었다. IS가 이 땅에 탄생하기 전, 냉전 시기에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운 바트당이 들어섰고, 이들이 무자비한 독재정권을 택하면서 악몽같은 오늘 날을 준비했다. 이라크의 가혹한 변화, 1958년 혁명부터 오늘까지의 그 기간을 이라크 화폐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몇년 전에 터키에 갔을 때 고모부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필자가 세계 화폐를 모은다고 하자, 고모부께서 “그래? 그럼 너에게 쿠르디스탄 화폐를 주마”라고 하셨다. 그는 ‘10000 이라크 디나르’를 꺼내며, “알파고 잘 보거라. 이게 쿠르디스탄 화폐야. 어때?” 라고 물으셨다. 필자는 이때 처음 이라크 디나르를 접하게 됐다.
쿠르디스탄과 이라크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라크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래전부터 자치권 확보를 투쟁해 온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디스탄’이라는 자치구를 설립했다. 이라크 내에서 거의 독립국가처럼 움직이고 있는 ‘쿠르디스탄’에서는 이라크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이라크 디나르’를 쓰고 있다.
2003년 후세인 독재체제 붕괴는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화폐제도까지 변화시켰다. 이라크 중앙은행이 2003년 새로 발행한 화폐와, 그 이전에 쓰이던 화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화폐 앞면의 사담 후세인 초상화가 삭제된 것이며 또 하나는 ‘바위돔’(Dome of the Rock)'이라고도 불리는 마스지드 쿱밧 아스-사크라(Kubbet es Sakhra)가 사라진 것이다. 사담 후세인 사진이 없어진 것은 이해하기 쉬운데, 바위돔 사진이 없어진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현존하는 이슬람 건물들 중 가장 오래 된 바위돔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 이전 이라크 화폐에서 볼 수 있던 바위돔은 현재 이란과 사우디 화폐에도 있다. 이슬람세계의 주도 국가는 이란과 사우디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가 화폐에 바위돔을 넣은 것은 이를 통해 자신도 이들 두 나라와 같은 반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바위돔이 사라진 것은 이라크가 ‘평범한 이슬람국가’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셈이다.
오늘 날에 이라크는 안타깝게도 평범한 이슬람국가가 되지 못했고, IS라는 테러 단체가 마음껏 활동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 재앙이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필자 보기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1차 대전 후 영국의 미숙한 중동정책에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잔인한 장면들이 눈에 크게 보이는 시작한 건 1958년부터이다.다시 그 10000 디나르로 돌아가자면, 이 화폐 앞면에 자유 기념물의 사진이 있다. 이 자유 기념물은 1958년에 일어난 혁명을 기념한 것이다. 그때까지 영국의 힘을 빌려서 이라크의 국왕이었던 파이살 2세, 왕가 그리고 왕당파는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학살에 가까운 시건으로 기억에 남은 이 사건을 역사 혁명으로 기록했다. 손에 피가 묻은 이 혁명으로 이라크 왕국은 이라크 공화국으로 변했다.
공화국 초기에는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운 바트당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은 군부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트당 인사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바트당 군부와 다르게 피가 흘리지 않는 쿠데타로 군부를 몰아냈다. 그러나 이라크에 존재하던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바트당의 친순니아랍 정책이 시아아랍과 쿠르드족에게 분노를 쌓이게 만들고, 국내적으로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바트당이 이라크를 독재정권을 통치하려고 했다. 이라크 침공 이후에 미국이 양쪽 사이에 균형을 잡지 않고, 이라크 정권을 시아아랍과 쿠르드족에게 돌려주었다. 시아아랍 중심으로 구성된 이라크 정부와 군부는 국내에 있는 순니아랍들에게 과거의 신판을 강력하게 했다. 2003년 이후로부터 단계별로 억압을 당한 장교 출신 순니아랍 인사들이 국제 테러 조직인 알 카이다와 힘을 합쳐서 오늘 날의 IS를 만들었다.
IS의 이라크 활동을 서술하기 위해 10000 디나르 뒷면을 보아야 한다. 이 화폐 뒷면에 보이는 알 누리 사원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모술의 상징이다. 이 사원 캠퍼스 안에 역사가 깊은 학당들, 요나의 무덤으로 알려진 묘비를 비롯해 수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있다. 모술에 있는 로마 제국 시대에서 남은 유적지들을 궤멸한 IS는 이슬람 문명의 대표적인 이 건물들도 파괴했다. IS에게는 순니든 시아든 묘비 자체를 이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이슬람적인 유적지와 함께 없애버린 것이다.
IS는 지금 시리아는 라까를 중심으로 이라크에서 모술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술은 이라크에서 바그다드 다음으로 2번째 큰 도시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IS는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할 겸, 거기에 있는 풍부한 석유를 불법으로 팔아 번 돈으로 모술을 점령하려고 했다. 2014년에 이라크 정부군이 도시를 보호하지 못하고, IS가 모술에 입성했다. IS는 큰 승리를 얻자,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알 누리 사원에서 설교를 통해 자신을 전 이슬람 세계 지도자로 선포했다. 그 시점부터 이라크에서는 어두움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라크가 어두운 역사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그다드를 비롯한 그 주변 지역은 중세에는 문명적으로 과학적으로 세계 중심이었다. 250디나르를 보면 이 나라가 한 때 얼마나 잘 나갔는지 알 수가 있다. 250디나르 앞면에는 과거 천문관측 도구였던 ‘아스트롤라베’가 있다. 천문학에 있어서 그 당시의 뛰어난 기술로 만든 이 도구로 연구 한 것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스트롤라베는 처음에 그리스에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져 있다. 그러나 이 도구를 주제로 한 책들이 처음에 6세기에 이라크 지역에서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도 많은 화폐에 이 아스트롤라베가 실려 있었다.
이 지폐 뒷면엔 사마라사원의 탑이 보인다. 사마라사원은 9세기 중엽 아바스왕조가 건립할 당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사원이었다고 한다. 15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사원에서 오늘 날 남아 있는 탑은 지금 이라크 영토에 존재했던 기원전 바벨왕국의 탑들과 비슷한 점들이 발견된다. 이는 사라진 사마라사원과 현존하는 탑이 당시 종교집회 장소 겸 학자들의 천문연구에 이용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250디나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천문학이다. 이라크에서 전쟁들이 발생하기 전에는 외국 관광객들 외에도 천문학계 많은 학자들이 탐방을 위해 사마라에 왔었다.
사마라 역시 IS의 위협을 받았다. IS가 2014년에 사마라를 침략하러 왔을 때, 그 지역 사람들과 이라크 군이 힘을 합쳐서 죽을 듯이 IS와 전쟁해 천문학 역사의 상징적인 이 도시를 겨우 보호할 수 있었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저자 알파고 시나씨의 이라크 화폐 탐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