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이웃에게서 얻은 통찰

경제적 부를 이루며 살아가는 외국인들

by 은달

우리 집은 큰 테라스가 달린 맨션 형태의 아파트인데, 총 6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빽빽한 아파트에 비하면 훨씬 적은 세대 수다. 스위스에는 이런 형태의 아파트가 꽤 있다. 아무래도 인구 수가 적다 보니 건물을 높이 올려 사람들을 많이 수용하는 것보다 낮은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전망이 좋은 것을 선호한다.


우리 아파트 건물은 꽤 신축이기도 해서 월세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나와 남자친구의 월급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라 이곳을 선택했다. 전에 살던 집이 너무 채광이 안 좋기도 했고, 전망이 좋고 해가 잘 나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사를 오고 난 후 너무나도 만족 중이다. 유럽의 겨울은 해가 잘 나지 않는 게 살기 힘든 부분 중 하나인데, 완벽한 남서향의 집에 살다 보니 겨울에도 오후에 잠깐 햇빛을 쬘 수 있다. 통창으로 된 거실이라 창밖을 바라보기도 좋다.


이사를 오고 난 후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이웃들과 좀더 소통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6세대밖에 안 되니 서로 모른 척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고, 이웃들과 알고 지내면서 필요할 때 도와주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을 써 쌀과자와 함께 편지로 각 세대의 편지함에 전달했다. 얼마 후 우리 윗집에 사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 한번 놀러오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으로 이웃과 제대로 소통할 기회였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벨을 눌렀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며.




남자는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큰 키에 짧은 유럽식 헤어스타일, 진한 파란색의 눈, 다부진 체격에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이대는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보였던 것 같다. 또한 영어를 굉장히 잘했다. 어서 오라며 우리와 눈을 맞추고 악수를 청했다. 남자의 이름은 두샨. 세르비아식 이름이라고 한다. 그가 세르비아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남자는 우리의 외투를 받아 걸어주고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와인 잔과 각종 핑거푸드, 그리고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볍게 와인 한 잔 하자는 그의 제안에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너무 여러가지가 준비되어 있어 놀랐다.


두샨은 와인을 좋아하는 듯했다. 와인 여러 병을 보여주며 어떤 것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이탈리아산 프리미티보(primitivo)를 좋아하는 우리는 그걸 골랐다. 그가 식탁에 놓인 것들을 모두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그는 제약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다. 본사가 미국에 있어 스위스에 오피스가 없다는 점이 특이했다. 출장이 잦아 지금 아파트에 항상 머무르지는 않지만, 요즘 들어 이 생활이 지쳤다며 좀더 정착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도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취리히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잔에 직장을 얻게 되어 왔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지금 남자친구와는 베른에서 만나 이곳에 함께 오게 되었다는 것도. 둘 다 불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로 와서 쉽지 않았지만, 차차 적응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슬쩍 그에게 불어를 잘 하냐고 물으니 얼마 전에 DELF 시험 B1을 합격했다고 했다. 그러나 불어가 모국어는 아닌 듯했다. 독일어도 하지 못한단다. 스위스에 오랜 기간 산 것 같은데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하지 않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그는 스위스에 2010년쯤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듯했다. 총 5번의 이사를 했으며, 현재는 시민권도 가진 사람이었다. 왜 직장이 스위스에 없는데 이곳에 머물 수 있는지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직책을 미루어 보아 마케팅 총괄 수준의 높은 직급에 있는 듯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자가로 매입했으며, 몬테네그로에 다른 아파트를 또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출장을 자주 다니고 바쁘게 일하며 살아온 사람 같았다. 또한 부에 대한 여유도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우리는 집으로 내려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누었던 다른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아랫집은 보 주(canton Vaud)의 IT 총괄이라고 한다. 두샨의 옆집은 우리집에 전에 살던 사람들인데, 윗층에 매물이 나오자 그것을 구입해 이사를 갔다. 우리집 대각선 아래층은 마케도니아 출신의 3인 가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 역시 자가로 보유중이다. 우리 옆집은 유명한 전 아이스하키 선수였다고 하는데, 얼굴을 비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아마 자가 보유 중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던 거다. 이 사실이 절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위스는 월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으며, 우리보다 이웃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내 주변에 이렇게나 부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도(다들 스위스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꼈다. 동시에 내가 외국인으로서 스위스에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 역시 외국인이었으며 처음부터 불어에 능통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EU 국적자이지만, 연고가 없는 스위스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기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윗집과의 만남은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심어주었다. 첫째, 비EU시민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스위스에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 둘째, 생각보다 스위스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외국인이 많다는 것. 셋째, 가까이 사는 이웃이 영어로 자유자재로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 물론 그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첫인상으로 봐서는 밝고 유쾌한 사람 같았다.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울보다 훨씬 조용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만큼, 이웃과 좀더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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