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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Apr 02. 2020

슈뢰딩거의 고양이 - 상

사막으로 출발


모로코의 길고양이들은 오수에 젖어 뾰족한 가시가 된 털과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 마치 돌연변이 고슴도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한 고양이는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등에 솟은 가시가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심 사러 가자.”


길바닥에 쪼그려 고양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Y의 한마디에 허리를 쭉 폈다. 나와 Y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새벽 한 시에 모로코 페즈 공항에 도착한 나머지 유심을 사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잘 모르는 지역에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구글 맵이 없이 여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에 사하라 사막에 가기 위해 메르주가로 가는 버스도 타야 했기 때문에, 시내에 나가서 유심과 버스 티켓을 구입하기로 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택시 기사에게 오로지 말로만 목적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버스 이름인 ‘수프라 투어’와 목적지 ‘메르주가’ 뿐이었다. 버스 사진을 보여주고 5번 정도 ‘수프라 투어’를 반복한 후에야 택시는 출발할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황토색 크라프트지에 민트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모습을 한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민트색 기차역으로 정신없이 달려간 이유는 ‘기차역에 통신사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기차역은 우리의 기대에 부흥해 주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모로코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내가 오렌지색 부스에서 손톱만 한 플라스틱 조각 하나로 행복해할 줄은 몰랐다. 플라스틱 조각으로 온 지구를 얻은 후에야 천천히 버스 터미널로 향할 수 있었다.


버스 터미널은 한국의 버스 터미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텅 빈 공간에 상앗빛 데스크가 하나 놓여있고, 직원은 두 명뿐이었다. 버스 티켓 구매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버스이다 보니, 직원들은 우리가 원하는 티켓을 바로 예약해주었다. 여자 직원이 ‘메르주가.’라고 툭 뱉은 후 종이 티켓 뭉치에서 두 장을 찢어 도장을 찍어주었다. 나는 티켓을 잃어버릴까 봐 바로 주머니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 지갑 가장 안쪽에 티켓을 밀어 넣었다. Y는 티켓을 두어 번 흔들어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버스 터미널을 배경으로 사진을 다섯 장 정도 찍었다.


“채영아 너 티켓도 같이 찍자.”


이미 주머니 속에 넣은 티켓을 다시 꺼내기 귀찮아서 가방 깊숙이 넣어서 꺼내기 힘들다고 대꾸하고 햇빛을 피하는 척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내 딴에는 빨리 찍을 거 찍고 가자는 신호였지만, Y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10장을 더 찍고 만족하는 사진을 건진 후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고양이라도 있었으면 고양이 구경이라도 했을 텐데,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유독 고양이가 없었다.



반질거리는 검은색 냉장고 바지와 오른쪽 가슴에 해 모양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회색 티셔츠는 장거리 이동 시 나의 필수 아이템이다. 바짓단과 함께 팔을 펄럭거리며 Y와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9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버스 터미널 안에 있는 화장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 줄을 서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몸 안에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난 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빈 몸 안에 다시 채워 넣을 과자와 생수를 공수해왔다. 완벽하게 9시간을 준비했다고 Y와 나는 자신만만해했다. 자리에 앉아서 출발하기 전 창문 밖을 보니 평소에는 근처에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한 마리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메르주가행 지옥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안은 굉장히 추웠다.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었고 나는 냉장고 바지만 입었을 뿐인데, 냉장고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탑승한 사람들 중 아무도 버스 온도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분명 아프리카에 와 있는데, 버스를 타고 있는 9시간은 나에게 시베리아였다. 9시간의 시베리아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좌석 사이의 간격이었다. 좌석 사이의 거리가 좁다 보니 등받이를 완전히 세우고 가야 했다. 한두 시간이면 버틸만했겠지만, 9시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고문이었다. 직각에 가까운 등받이는 사막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의 진을 다 뽑아먹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진정한 보스 몬스터는 따로 있었다. 중간에 탑승한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었다. 나와 Y의 뒷좌석에 아이 두 명이 앉았고, 불행은 시작됐다. 두 아이는 계속 몸을 움직이다가 우리가 앉아 있는 좌석 틈으로 손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5cm도 안 되는 작은 두 개의 손가락은 166cm와 167cm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Y는 공격에 굴복해 출발한 지 3시간째인 오후 10시까지 뜬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10시에 아이들이 잠들어서야 공격은 멈추었다. 손가락의 난이 멈추자마자, 이번에는 나의 위장에 문제가 생겼다.


오후 11시 15분쯤, 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멀미도 아니고 똥이 마려워서 아픈 배도 아니었다. 위를 뾰족한 바늘로 구멍을 내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Y를 깨우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지퍼백을 열어 베아제 두 알을 생수와 함께 삼켰다. 30분이 지나도 위장 속의 바늘들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뒤척이던 Y가 일어나서 약을 먹는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괜찮아.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해.”


화가 났다. 사막에 도착해서도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창가를 보고 누웠다가, 신발을 벗고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아 몸을 돌돌 말았다가, 다시 몸을 대자로 펼치기도 하며 바늘들이 위장에 닿지 않을 수 있는 자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12시 13분에 중간 휴게소에 버스가 잠시 멈춰 섰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버스에서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보단 새 공기를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Y와 함께 버스 밖으로 나갔다. 10분 정도 밤공기를 마시니 90도 의자에서 고문당하는 것보다는 좀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왜 그때 배가 아팠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연두색의 길쭉한 알약이 나에게 불운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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