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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4. 2023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에, 그곳에서 동심(童心)을 찾는다

심리상담가의 사색20(작성: 2023.8.27.)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robbie36, 출처 Unsplash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를 보면 좋겠다 싶어서, 영화를 볼 때는 주로 애니메이션을 많이 찾아봤다. 그런데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점점 한계를 드러내다가, 내가 어린 시절에 유명했던 해리 포터를 같이 보게 되었다. 마법사의 돌부터 같이 아이와 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보지 못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아이와 같이 보니 그 기분이 매우 묘했다.

비록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이지만, 나는 어린시절에 대해 어떤 기억과 감정이 남아있을까? 그리고 이번 영화는 어떤 마음으로 남았을까?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은 참 단순했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친구들이랑 엄청나게 했었고, 그 게임을 더 하려고 새벽에 몰래 일어나서 하기도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수험생 생활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게임을 줄이다가 결국은 하지 않게 되었고, 좋아하던 운동도 그만두게 되었다. 친구들이 한 번씩 운동하자고 하거나 게임하자고 해도 그걸 피하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다. 식사하는 시간도 아끼고자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고, 그 도시락도 빨리 먹고 다시 공부하러 가곤 했었다.

상당히 수험생으로서 집착적인 생활을 했던 탓에, 원래부터 그리 잘 읽지 않았던 책이지만, 더욱 책에 대해서 멀어지게 되었다. 독서가 언어 영역에 좋다고 하지만, 그건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누적된 결과인 것이지, 당장의 수험생에게는 시간 낭비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인기 있었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에 대해 떠올릴 때면, 다소 메마르고 매우 건조한 느낌이 든다. 색감으로 이야기하자면 매우 회색 같은 모노톤의 느낌이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우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감정 없이 공부만 하는 기계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아이와 해리포터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매우 묘했다고 했는데, 그 기분은 뭔가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에 대해 누리지 않았던 아쉬움과 이와 달리 벅찬 기분이 공존했던 순간을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우선 그 유명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보는 것이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해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들었다.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를 안 본 것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과 노는 것, 컴퓨터 게임과 같은 취미 생활을 일절 하지 않으려고 한 것 등 말이다. 당시에는 정말 경주마처럼 딱 하나 앞으로 달려나가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과 흥미로운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이 결과, 지금도 여전히 나는 취미를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 영역 외에는 정말 기초적인 상식이라고 할만한 지식이나 행동도 부족할 때가 있기도 하다.

한편, 벅찬 기분 또한 들었는데 그것은 아이와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 내가 해리포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과학 분야 중에서 심리학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 전공이다 보니 이 분야에 당연히 눈길이 간다. 반면, 소설과 같은 장르는 무언가 재미를 위해 시간 낭비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터라 손길이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이와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해리포터 책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고, 이러한 나 자신이 놀라웠다. 이것은 분명 나에게는 평소와 다른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 벅찬 감정에 더 마음이 끌렸다. 아쉬운 내 삶에 한 조각 퍼즐을 채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주마 같은 나의 삶이 다소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즉, '재미'라는 퍼즐의 조각, '재미'를 위한 시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내 삶에 펼쳐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이는 재미를 위해 살고, 그 현재를 누린다. 우리는 그것을 동심(童心)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 덕분에 나는 그 동심을 찾고,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에, 그곳에 남겨진 나의 동심을 조금씩 조금씩 누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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