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현 Nov 24. 2023

모두를 위한 인생 공략법이나 매뉴얼은 없다

심리상담가의 사색24(작성: 2023.11.12.)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claybanks, 출처 Unsplash


많은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인생을 살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선생, 멘토, 코치 등 수많은 전문가로부터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공략집이나 매뉴얼을 기대한다. 심리상담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어서 일부 내담자들은 상담가로부터 자신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는 묘책이나 방법을 배우고 싶고, 이것을 통해 빠르게 고통을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내담자 P 씨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서 사는 듯한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여러 모습에 대해 불만이 많으면서, 도대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매우 답답해했다.

그는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이 현재 나아지고는 싶지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을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다. 몇 회기를 진행한 어느 날, P 씨는 상담실의 서가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책을 보면서 그는 한참을 생각에 잠기는 듯해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다시 현재 이 순간을 돌아올 때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한참 책에 시선이 꽂혀 있었던 P 씨가 어느덧 고개를 돌리며, 나와 눈 맞춤을 다시 하였다. 나는 어떤 생각이 나는지 혹은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지에 대해 차분히 물었다. 대답하기까지에도 P 씨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문득 대답하기 시작했다.

"요즘 책들을 보면, 자기계발서가 많이 있잖아요. 거기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런 방법이면 성공한다, 이렇게 하면 대박 난다, 자기계발에는 이게 최고다 등등으로 말이에요. 그것처럼 제 인생도 뭔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인생 공략법이나 인생 매뉴얼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요."

비록 내 상담실에는 자기계발서가 없지만, P는 상담실의 서가를 보며 자신이 보아왔던 여러 자기계발서 책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위한 공략법이나 매뉴얼 같은 드라마틱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혼란감, 막막함을 천천히 느끼며, 이 혼란감이나 막막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로 인해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이런 혼란감과 막막함을 느끼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 혼란감과 막막함과 관련한 여러 자신의 느낌과 감정, 생각, 이미지, 근원 등을 탐색하고 자신을 진지하게 이해하기보다는 빠르게 현재 이 불편한 감정이나 감각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가 느끼고 있는 불편함과 어려움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저도 P 씨가 말한 것처럼 모두를 위한 인생 공략법이나 매뉴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저를 찾아오는 많은 분들에게 그걸 바로 알려드릴 수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저는 점점 확신을 하게 되는 게 하나 있는데요. 

그건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인생 공략법이나 매뉴얼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책에서 인생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정답일 겁니다. 하지만 P 씨에게 정답일 수는 없어요. 그리고 어떤 선생이나 스승, 혹은 멘토나 선배가 어떤 방법이 좋다고 조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P 씨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P 씨가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체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건 P 씨에게 정답이지 않을 거예요."


그는 다소간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나의 대답이 자신이 예상했던 대답인 듯한 표정으로 끄덕이기도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인생 공략법이나 매뉴얼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방법은 자신이 찾아야만 한다는 엄숙한 진실을.


나 또한 때때로 어떤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선생이나 스승, 멘토나 선배와 같은 나보다 좀 더 경험을 했던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혹은 나와 동년배인 누군가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도 내 고민에 대해 나누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은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들의 이야기가 내 삶에 고스란히 적용되지 않음을 안다. 왜냐하면 그에게 정답이었던 이유는 그의 삶의 상황과 맥락, 그의 특성과 기질 등 총체적으로 그에게 맞아떨어져서 정답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 상황과 맥락, 나의 특성과 기질과 같은 여러 요소들은 그와는 너무 다르다.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답이더라도, 결코 나에게는 정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 방법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정답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결코 그의 것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결코 우리 모두를 위한 인생 공략법이나 인생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이고 힘 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살기가 쉽지 않고, 막막해지기만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자신감과 자유로움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삶에서 주인공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하는 사실이고, 거기에서 다른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로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신감과 자유로움이 좋다. 무한한 자유 속에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내가 더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만의 정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백견이 불여일행_경험의 중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