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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Dec 10. 2023

선한 의도 속에서의 관계

심리상담가의 사색 26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timmarshall, 출처 Unsplash


명상으로 인연이 된 지인이 연락을 해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명상과 관련하여 전할 말이 있다는 말과 함께. 지인을 만나는 것은 좋았는데, 명상과 관련하여 전할 말이 있다는 말은 좋지 않았다. 내면에서 불안과 걱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속한 날이 되었고, 지인과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나누고 즐거우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누렸다. 한편, 명상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긴장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인이 명상과 관련하여 전할 말을 시작하는 순간이 왔다.


'올 것이 왔구나.'


처음 들었던 생각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불안과 걱정, 염려와 긴장이 느껴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인은 명상과 관련하여 내가 주의하거나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 언급을 해주었다. 자신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조심스러워하면서. 나는 '역시나'라고 하는 생각과 함께 다소 간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꼈다. 약간은 심장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몸에서 열기가 생겨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나름대로는 명상을 잘 해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막는 것 같고 마치 나에게 태클을 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불안과 걱정, 염려와 긴장은 비로소 명상과 관련한 나의 무언가에 대해 언급이 되고,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누군가로부터 지적받고, 언급 받는 것이 상당한 불쾌함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나의 내면의 순수성이 누군가로부터 오해받는 듯한 느낌이었고, 나의 진심과 의도가 훼손된다는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나의 자아상(image)에 집착하고 있고, 이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은 그것에 붙들려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불편해하는 마음을 숨기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후에 내 마음에 앙금이 남은 채, 지인을 만나는 것을 불편해했을 것이고 점점 만남을 꺼려 했을 것이다. 점차 관계가 멀어지고, 지인은 영문도 모른 채 나와의 관계가 손절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지인이 명상과 관련하여 전할 말을 이야기한 후, 나의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내놓았다. 나의 불쾌감과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고 나자 지인도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또한 나의 반응에 대해 적지 않게 놀라면서 자신이 오히려 미안해하는 표정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도 다소 간의 불쾌함이나 불편함이 한 번 더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화기애애 지고, 더 솔직하게 명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내가 이 불편과 불쾌함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관계가 정말로 끝나고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맞서는 용기였다. 그냥 묻어두고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받아치거나,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방어하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면, 적어도 공식적으로 명백하게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의 불쾌함을 표현함으로써 상대도 불쾌하게 느끼고, 서로 기분이 상한 채 이야기가 끝났다면 정말로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채, 나는 다시 한번 이제 내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용기는 상황을 바꾸었다. 우리의 관계가 비온 뒤에 땅 굳듯이 더 단단해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롯이 나의 용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인 또한 나와의 관계에 대한 선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만약 우리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나의 반응에 대해 자신 또한 상처 입거나 기분이 상해서 호의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아쉽게도 여기에서 끝났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지인과 나,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애정과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관계는 서로 간의 선한 의도 속에서만 진실될 수 있다. 그래야 진심을 전해주고 전해 받으며 가까워질 수 있고, 그 관계는 비로소 단단해지며 편안해질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사실 상대가 나에게 선한 의도, 애정과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과연 나는 상대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향한 애정과 사랑, 두 사람의 관계를 정말 중요시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에 어느 정도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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