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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Feb 04. 2024

전문직(전문가)에 대한 환상과 현실

심리상담가의 사색30


전문직(전문가)에 대한 환상과 현실_심리상담가의 사색 30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8moments, 출처 Unsplash


내담자 C는 진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원해서 들어간 직장이었지만, 자신이 현재 근무하는 곳의 직업적인 환경이나 분위기가 점점 너무 안 좋아지다 보니,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곧 자신이 40대가 되니, 얼른 뭔가를 결정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른바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처우나 대우가 만족스럽지 않아 다른 전문직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전문직을 통해서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나의 질문에 여러 이야기를 하였으나, '경제적 보상'이 가장 높은 순위에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에 나는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한편,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의대 열풍이 한창이다. SKY도 버리고 의대 간다는 소식은 몇 년 간 입시철의 단골손님 뉴스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면서 문득 '의사'라는 전문직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해봤다.


처음에는 '의대 갈 수 있으면 가는 거지.'라고 생각을 했다. 다른 직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경제적 보상이나 사회적 지위나 인정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의사라는 전문직을 달고 나면, 만족하는 삶을 지낼까에 관한 고민이 생겨났다. '벌이야 남들보다 좀 더 높긴 할 텐데, 결국 월급을 받는 노동자라는 건 똑같을 텐데...'라고 말이다.

(개업하는 의사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자기 사업인 만큼 일하는 시간이 더 많으면 많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전문직 환상'에 관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전문직만 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전문직에 관한 과도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개인적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20-30대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박사학위를 마무리 짓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많은 기회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서울이라는 곳을 떠나면 내가 잘 생존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제주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눠보니, 문득 내가 서울에서 지내면서 생각해왔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던 것인가, 어쩌면 허구나 신기루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자세히 말하자면, 과연 삶에서 나의 부모를 포함한 많은 어르신들이 이야기했던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 취업'하고 사는 게 정말 성공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 판사, 검사 등 소위 국가에서 보증하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이 된다면 성공한 것,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믿음이다.

(네이버로 전문직을 검색해 보면, 8대 전문직, 7대 전문직 등 전문직에 관한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다.)


제주에서 만나면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대 초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숙박 사업을 하는 사람,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미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프랜차이즈 기업화를 시도하는 사람, 1조 매출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소박하게 자기의 가게를 차려 그곳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사는 사람 등등 정말 많았다.


지금에서야 이것들을 글 한 문단으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10대에서 부모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좋은 대학=좋은 취업'이었고, 내 도식에 사업을 하는 건 없었다. 20대 시절에 선배를 보면서 그저 박사학위를 한 후에는 교수를 지원하거나 상담 센터를 개업하는 것만이 내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그리고 이른바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펼쳐내고 자기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은 내 머릿속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선했고, 나의 좁디좁은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좋은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 남들이 우러러볼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되지 않더라도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누리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인정도 받는 자를 눈앞에서 본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삶의 다양성과 기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삶의 행복에는 정답이나 공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 동기나 선후배를 보면, 평범하게 산다.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이름이 알려진 곳에 취업해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다를 뿐(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 안에서 각자가 지내는 삶은 비슷하다. 결혼한 사람은 자녀 걱정이나 재테크 고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연애 고민 등 보통의 사람들이 할 법한 고민들을 하고 산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는 이야기가 결국 '금수저'는 이기지 못한다고 하며 나름 속상해하기도 한다. (때때로, 사실은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도 똑같은 마음이기도 하고 그렇다.)


의사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일에만 매달리고 가족 관계는 등한시하고 배우자를 끊임없이 문제시하면서, 결국 별거나 이혼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병원 개원을 해보지만 수많은 빚만 남고, 결국 좌절하며 페이닥(월급받는 의사)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모든 전문직 종사자가 이렇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전문직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잘 살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 우리의 소망이 담긴 환상이지, 결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 준다. 게다가 예전 시대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와 미래에 전문직의 환상이 계속 이어질지는 더더욱 불투명하고 확신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전문직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기는 있겠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 그러니 다수가 의대 가야 행복하다고,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좋은 곳에 취업해야 한다고, 전문직이어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건 그들의 생각일 뿐이지 내 것은 아니다. 설령 나의 부모, 멘토라고 하더라도 나를 애정 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 나만의 행복이 무엇인지 구체화될 것이고, 그것을 위한 나만의 행복 공식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건 누가 해주지 못한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만 나를 위해 주어진 과제이다.

우리 모두 좀 더 자신의 내면을 진실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그럴 것이다. 또한 나를 찾아오는 많은 내담자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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