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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Jan 24. 2024

울면안돼 캐롤 가사는 아이를 위한 좋은 노래일까?

심리상담가의 사색 29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jwwhitt, 출처 Unsplash


20대 중후반이 되면서부터 눈물이 많이 늘었다. 영화나 드라마 장면에서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을 보게 되면, 그렇게 눈물이 차오른다. 내담자 J 씨도 다르지 않았다. 길에서 채소 파는 할머니,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 것만 봐도 자기 마음도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상담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순간, J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이시냐? 눈가가 촉촉하신 것 같다."라고 물으니,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더 이상 울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울면 안 된다...... 울면 안 된다...... 내 마음에 그의 말이 남았다.

이것이 비단 내담자 J 분만의 말은 아니었다. 수많은 내담자가 심리 상담에서 눈물을 흘리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어떻게든 보여주지 않으려고 꾹꾹 참는 모습을 보았다. 도대체 왜 우리는 눈물에 대해 이렇게 주저할까? 

눈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체적인 현상이자, 정서적 반응이다. 누가 더 많이 울고, 덜 울고 하는 데에 있어서 개인차가 분명히 있겠지만, 눈물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인데, 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을까?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인간으로서 불쾌한 감정을 피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관계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관계에서 거부당하고, 단절되는 느낌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되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두려운 일이다. 즉, 공포다.

내담자 J는 어려서부터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고, 그렇다 보니 눈물도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것으로 배웠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워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에게 "그런 사소한 일로 울고 그래. 어른스럽지 못하게."라는 이야기를 했다. 혹은 그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 아버지는 그에게 "눈물 그렇게 쉽게 보이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못 친 걸로 속상해서 눈물을 보이면, 같은 반 친구들은 J가 운다고 하면서 J를 놀렸다. 자신은 속상한데, 친구들은 J의 눈물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비슷한 일들을 점점 경험하면서, 내담자 J는 새로운 생각을 해냈다. 바로 '눈물을 보이는 건 안 좋은 것'이라고 말이다. 눈물을 보였을 때 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보니, J는 눈물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아직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을 달래기가 어려운 어린아이였던 J에게 이와 같은 일은 그야말로 공포였고, 그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과연 내담자 J의 주변 사람 때문이었던 것일까? 직접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J에게 영향을 준 것은 맞고 그들이 J를 힘들게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만 그럴까? 내담자 J만 불운하게도 나쁜 사람들 속에 살았던 사람이었을까?

J만의 일은 아니다. 나와 함께한 수많은 내담자도 이와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J만 특별히 불운한 환경이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조금 시야를 넓혀봐서,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대체 왜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을까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그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길래,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자, 정서적 반응인 눈물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중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이번 글의 제목에서 썼던 것처럼,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된 노래와 같은 거시적인 사회나 문화 속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울면 안 돼.'라는 유명한 캐롤 노래가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 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날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노래고, 이 노래가 낯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들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겨울만 되면 듣는 노래 중 하나이니.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두 가지를 배우게 된다. 하나는 울면 안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는 건 나쁜 행동이고, 나쁜 아이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울면서 떼를 쓰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 이 노래를 많이 활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노래에서조차 우리는 눈물은 나쁜 것이고, 나쁜 행동이라는 걸 배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가, 정말 근래에 와서 해 본 생각이다.) 그 결과, 눈물을 흘리는 건 안 좋은 행동이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을 숨겨 버렸다. 이처럼 의식도 못 한 채, 우리는 자연스러운 인간이 될 권리를 박탈당했고, 자연스러운 인간이 될 자유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기도 했으며, 타인에게 자연스러운 인간이 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강요하기도 했다.


심리 상담에서 내담자가 눈물을 흘릴 때면, 나는 그것을 인정해 주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현상이라고 말이다. 오히려 더 솔직해지길 바라며, 이로 인해 울고 싶으면 더 울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없는 로봇이 아니라,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는 인간이고 그로 인한 자연적인 현상인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눈물을 문제시하는 사회가 아니길, 그런 문화가 퍼져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상담실에서 나는 진솔하고 솔직한 눈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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