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 28
특출난 재능, 차별화되는 개성, 그것의 그늘에 관하여_심리상담가의 사색 28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a8ka, 출처 Unsplash
내담자 P는 자기의 사업을 펼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인정과 환호를 받았다. 남들은 따라 하기조차 어려운 재능을 그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더 펼치고 싶어 했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서 보다 큰 무대와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가 없었다.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물리적 조건(시간과 공간)에서 그는 가족을 챙겨야 했고, 잠을 자기도 해야 하고, 먹고 싸기도 해야 했다.
그는 여기에서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현실적인 조건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제거하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족을 신경 쓰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다.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여기에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가족들이 자기를 좀 더 배려해 주고, 자신이 온전히 재능을 펼치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랐다. 가족이 자기가 원하는 데로 따라오지 않으면 화내거나 내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가족과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재능을 사업 분야에서 펼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 또한 아니었다. 자신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내담자 P를 보면서 남들은 가져볼 수도 없는 그의 특출난 재능이 대단해 보이고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의 삶에서 끊어내기 어려운 고통의 족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뚜렷이 구분되고 차별화되어서 매우 특별해 보이는 그의 재능이, 사실은 집착으로 이어져 그를 괴롭게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성'은 개인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모두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뭔가가 있다고 얘기하는 배경에는 '개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양육하거나, 학생을 가르칠 때도 자신만의 고유하고 다른 사람과는 차별되는 독특함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너만의 재능이 있을 거야.", "다른 사람과는 다른 뭔가를 갖고 있을 거야.", "너는 특별해. 대단하지."라고 말하는 편이지, "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 "너도 다른 사람과 똑같지."라고는 말하지 않지 않는가.
그리고 개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출 것을 이야기한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따라 하지 못할 것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많은 젊은이들은 의사, 변호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갖지 못하는 전문직을 원한다.
한편, 남들과 차별화되는 어떤 특성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성이라면, 이는 수많은 인정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공부 잘하는 학생은 주변에서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동시에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이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은 사회에 수용되는데, 거기에서 그는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야.'라는 데서만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생겨나는 특출남, 차별성은 당사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조건적으로 제공되는 인정과 칭찬은 그의 마음을 흔든다. 당사자로 하여금 '공부해야지. 공부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공부야말로 내가 잘 하는 거지. 여기서 성적 떨어지면 안 돼. 계속 성적 유지해야 돼. 2등으로 밀려나면 사람들이 실망할 거야.' 등의 생각들을 갖게 한다. 그 결과, 그는 공부에 점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부를 못 하게 하면, 그러한 사람이나 환경을 방해 세력이라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밀쳐내 버리려고 한다.
또한 특출남이나 차별성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구별짓게 하고, 자신이 우월적인 존재인 것만 같은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난 얘들보다 공부 더 잘하지. 난 대단한 사람이야. 멋진 사람이지. 반면에 얘들은 성적이 안 좋으니까 그렇게 혼나지. 혼나도 싸지.', '나는 얘네들과 다르지. 난 특출나잖아.'와 같이, 자신을 대단히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 상대적으로 타인을 낮은 위치에 갖다 두면서,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내려다보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공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재능이나 특성 또한 사회에서 조건적으로 수용되는 것이라면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정과 칭찬과 같은 만족감이 조건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막히게 직감적으로 알고 있고, 그와 같은 긍정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P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던 그의 재능은 그로 하여금 '난 그들과 달라. 난 대단한 사람이야. 재능이 엄청나잖아.'와 같은 태도를 갖게 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나 견해는 보잘것없는 하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가족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내가 더 이상 존중하고 배려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이렇게 대단한 자신을 떠받들어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가 겪게 되는 것은 '외로움', '단절', '고립'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 한 존재이다 보니, 더 이상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타인과 연결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족은 점점 그를 멀리하게 되었고 그는 혼자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사람에게서 재능이라고 인정받았던 특출난 특성은 그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떨어뜨려놓았고, 그는 망망대해의 외딴 무인도처럼 홀로 고립되었다. 이후에는 '외로움'이라는 크나큰 정서적인 고통의 쓰나미가 찾아왔다.
나는 내담자에게 자신만의 고유성, 독특함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나 강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자신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자신감의 근원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하라고 권유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것으로 인해 과도한 자기애나 우월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이 결과 외로움이나 고립 또한 같이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외로움이나 고립 따위는 아무렇지 않고 집착으로 이어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면, 한번은 되묻고 싶다. 만약에 나 홀로 혼자 무인도에서 산다면, 당신이 그렇게 중요시하는 특출난 재능과 개성, 특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