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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나의 마음숲 Dec 16. 2021

이제야 나는 안다.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소문난 떼쟁이였다.  

동시에 할머니의 껌딱지였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걸어 다니고 뛰어다닐 때까지도 할머니의 등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덕분에 나는 오자다리를 훈장으로 얻었다.)


할머니 등은 낮뿐 아니라 밤에도 내 차지였다.

나는 할머니 등에 붙어 잠을 잤고, 잠에서 깨는 새벽이면 잠든 할머니에게 손을 뻗어 할머니의 옆구리 틈으로 손을 끼워 넣었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잠이 깨어 파고드는 내 손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파고드는 내 손을 느끼는 즉시 당신의 팔을 들어 내 손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일찍 혼자가 된 할머니는 친정과 시댁의 권유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재가했다.

힘들게 한 두 번째 결혼에서의 시집살이는 일찍 남편을 여윈 시절만큼이나 힘겨운 시간이었다.

어린 아들은 재가한 이복형제들 틈에서 잘 지내지 못했고, 당신의 시집살이에 눈칫밥을 먹고 있는 어린 아들을 지켜보는 일은 할머니에겐 쉽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는 당신의 어린 아들을 그 집에서 지켜내지 못했다.

할머니의 어린 아들은 큰 시누의 집에서 7남매의 막내아들처럼 키워졌다.




거나하게 취해버린 아빠가 할머니와 내가 쓰고 있는 방을 향해 악을 쓰며 울분을 토해내던 밤, 어린 나는 할머니의 등에 기대 숨을 죽이고 눈물을 흘렸다.

술에 힘을 빌려 무서운 야수로 돌변한 아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할머니는 그저 말없이 그 소란을 견뎌내었다.

소란이 잠잠해지고 밤이 깊어 모두가 잠이 든 깜깜한 밤, 나는 또다시 할머니의 옆구리로 손을 뻗었다. 할머니는 그날 밤에도 팔을 들어 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내어 주었다.



“엄마가 올 고추농사를 아주 잘 지었어. 엄마 목돈 좀 만졌다. 규린이 공부할 때 필요한 거 쓰라고 통장에 돈 넣었으니까 전해줘.”​


고3이 되는 손녀에게 전해주라며 보내온 친정엄마의 여름 땀, 50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나는 안다.

 돈이  옛날 당신의 3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받은 할머니의 보살핌이 당신의 어린 아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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