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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옳은 Apr 02. 2022

월급쟁이 직장인 그 이상이 되고 싶은 당신께

저도 겸직하기 엄두가 안 났었는데요

직장인 1년차  30 근속 근무를  과장님을 보며  생각을 했다. 월화수목금 5 꼬박꼬박 출근하는 삶을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오래 하신거지? 그런데 이대로라면 나도 그렇게 50대를 맞이하게 될텐데…!’ 근속근무는 존경스럽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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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서 나를 찾는 곳(?)이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내 삶에서 이 직장을 빼면 남는 게 너무 없어보였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 너무 복잡한 업무 절차들이 질렸고 내가 맡은 사업인데 윗선에서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구조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워라밸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이라기엔 9급 1호봉의 실수령액은 밸런스라는 말을 어디 감히 갖다붙히는 건지 화가 날 정도라 ‘워라밸’이 아니라 그냥 ‘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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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을 쌓아나갈 수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며 조금씩 인정받아가는 모습을 곁눈질하며 ‘저게 사람 사는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노력들에 ‘경쟁’이 붙으면 삶이 팍팍해지는거라고, 도리어 공무원 시험 준비 방법에 대해 물어오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더 눈길이 갔다.



지금 이 직업을 유지하면서 나만의 색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학자금 등 갚아야 할 빚이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ex.나의 원가족, 예비신랑)이 있어 직장을 바꿀 엄두는 내지 못했다. 공무원으로 지낸 3년 여 간의 시간을 경력을 쳐 줄 사기업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사기업에 간다고 해서 내가 지금 조직에서 느끼는 불편함, 직장 동료들 간에 발생하는 어려움이 없다는 보장도 없고. 공기업도 적잖이 수직적일 것이고 서울에서 지내기 어려울 것 같아 확 끌리는 선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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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모조리 핑계라는 걸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잘 안다. 실패할까봐 두려웠다. 9급 공무원도 어렵게 된 건데 괜한 치기로 박차고 나갔다가 후회할까봐 이 계륵같은 직업을 계속 붙들고 지냈다.


2020년 12월, 헤이조이스 ‘미 비즈니스 사업하듯 나를 성장시키기’ 강연에서 김미경 강사님께 질문을 남겼다. 따뜻한 답변 참 감사했어요.


커리어 개발 강의를 참 많이 들으러 다녔다. 혹시 그곳에 답이 있을까봐. 헤이조이스 김미경 강사님 특강 때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 당시)26살 공무원인데 이직이 어렵습니다. 자기계발을 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님은 “26살이면 저희가 보기에는 너무너무 어린 나이인데 말이죠…ㅎㅎ” 라고 말씀해주셨고 김미경 대표님은 “민간과 닿으려는 공직 내 움직임을 잘 읽고 내부에서 열리는 교육이 정말 많을텐데 그 기 회를 잡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보라.”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부처나 예수가 나에게 이직을 하라고 해도 나는 못 했을 거다. 부처님, 예수님, 저는 이래서 직업을 못 바꾸고요, 저래서 안 되고요… 마음 속에서 답을 다 정해놓고 밖에서 귀인을 찾아 헤매고 다니다니, 나도 참. 김미경 대표님의 답변이 지금 보니 우문현답이다. 버리지 못할 직업이면 그 안에서 최고가 되라는.​​


대학원을 가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월요일마다 10만원이 빠져나가게 설정해놔서 매주 목표를 리마인드 할 수 있도록 돈을 모으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지 긴가민가했다. 당시 같이 근무하던 과장님께서는 이공계열 석사를 졸업하시고 취득한 자격증도 굉장히 많으셨다. 그럼에도 지방직 공무원의 특성 상 그 학위가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부서 배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성과들은 자기만족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자기만족에 몇 천 만원을 쓰고 쫓기듯 수업을 듣기에는 그렇게까지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고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자기계발 같았다.​​


차라리 공무원이 겸직이 수월한 직업이면 좋았을텐데. 겸직이 허용되는 조건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책 내기, 음반 내기, 강연 정도가 다였다. 어떤 노력도 소용없게 느껴졌다.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직업적 한계 때문에 끝내 장벽에 부딪쳐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족히 일 년은 넘게 이런 식으로 나의 쓸모를 고민하고 있었다.


​될 지 안 될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작가가 되든 강사가 되든 무엇이 되든, 그게 겸직 허용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대박이 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수익이 난다고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릴텐데…?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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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꼬를 틀면서 1:1 코칭을 받게 되고,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고, 공동 에세이 출간 프로젝트도 시작하게 되었다.(이 프로젝트는 또다른 부캐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서는 어떤 내용인지 공개할 계획이 없다.) 브런치에 조금씩 달리는 댓글에서 독자님들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었고 에세이 프로젝트에서 만난 분은 나를 ‘에디터님’이라고 불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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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언가가 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네…? 알고 있던 세계가 갑자기 확장되는 신기한 순간들을 조금씩 접하게 됐다.


어둠 속의 빛처럼 My love
다가설 수 없는 너를 내게 보여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느껴 My love
사랑하는 너를 모두 느낄 수 있어
어둠 속의 빛처럼

너에게 나를 맞춰가고 있다 말하지 마
나에게 너를 초대할 뿐이야

- <나에게로의 초대> 가사 중 일부-


‘나에게로의 초대’라는 노래를 보면 “너에게 나를 맞춰가고 있다 말하지 마. 나에게 너를 초대할 뿐이야.”라는 가사가 나온다. 작가, 에디터 등 내게 여유를 가져다 준 이 부캐들의 재능을 나는 진작 갖고 있었을 거다. 그 자아들이 이제 깨어나 월급쟁이 직장인인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어 만나게 된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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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살아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온전히 쉬는 시간은 줄었지만 고민하던 부분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아 사무실에서도 불만은 줄고 자신감이 붙었다. 궂은 순간들도 내 부캐를 위한 또 하나의 경험, 자산 뭐 그런 것들로 치환되어 받아들여졌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관점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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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고 여전히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가야할 길이 구만 리다. 하지만 이 작은 첫 걸음이 참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다른 누군가도 용기를 내기 바라는 마음에 글을 적어보았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회사원으로 이번 생을 끝내기는 싫어서 주식이나 좀 해볼까, 취미 클래스나 좀 들어볼까, 하다가 그마저도 성에 안 차는 직장인이 있다면 무언가가 되기를 너무 오래 주저하지 말고 조금씩 시작해보시기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란다면 최소한 로또를 사야한다는 걸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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