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가장 좋았을 때'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by 미래

친구들과 만날 때면 '어릴 때가 좋았지' '고등학생 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그리 많은 세월을 산 것도 아니지만 확실히 지금보단 그때가 좋았다. 그 당시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을 테지만, 그 시기를 지나오니 여전히 그립기만 한 시절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가장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기를 즐기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스러웠다. 가장 예쁘고 젊은 날, 낙엽만 굴러도 웃음이 멈추지 않던 날. 모든 사라지는 건 아련했다.


'난 왜 그때를 즐기지 못했지' '뭐가 아까워서 다 쏟아붓지 못했을까'


라떼 시절 어른들이 흔히 말하길, '너 나이 때가 가장 좋을 때야'라고 하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으레 당연하다 여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저 젊음에 대한 부러움 혹은 그리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과 10년 쯤되자 가끔 그런 어른 같은 말들을 할 때가 있다.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어' '그때가 가장 좋았지' 하고. '저때' '그때'는 모두 지금은 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이다.


이제는 '너 나이 때가 가장 좋을 때야'라는 말을 들으면 '네 그렇죠..'보단 '네 맞아요! 지금이 가장 좋아요'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회나 반성보단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한 번뿐인 이 시간을 즐기겠다고.

'너 나이 때가 좋을 때야'라는 건 그러니 지금을, 현재를 즐기라는 말처럼 들렸다. 가장 젊고 좋은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그 순간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 모든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 시절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가 가장 좋았던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렇다고 행복하리 만큼 즐겼던 건 아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입을 앞두든, 취업을 앞두든 내 인생이 중요한 변곡점 앞에선 언제나 즐길 여력이 없었다. 물론 내 목표,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들이었지만, 그 선택들로 연애도, 친구도, 만남도, 여행도 멈췄다. 내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잃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간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를 남길 것 같다면, 그 선택을 옳은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소유냐, 경험이냐. 경험만큼 가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의 시간 동안 나를 존재하게 할 테니 그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어차피 다시 못 갈 시간이라면 지금 주어진 오늘이라도 즐겨야겠다. 지금 하는 일 모두 즐기면서 해야겠다.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매일 밀린 과제 해치우듯 할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 가슴에 새기는 마음으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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