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경기였으며, 최악의 경기였다.

by 미래

스포츠의 핵심은 공정한 판정이다. 스포츠에는 정확한 룰이 있고, 심판도 룰 안에서 평가를 하고 판단을 내린다. 규칙과 규정이 있다는 것은 정해진 틀 안에서 즐기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실수든, 그게 실력이든 결과에 승복하고 판정에 동의할 수 있어야 그 스포츠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판정도 경기의 일부라면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정확한 룰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판정이라면, 그들이 제대로 된 경기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심판의 판정을 신뢰할 수 있을까. 선수들은 판정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판정은 선수 개인 역량 밖의 일이라면 더더욱 심사는 공정해야 한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가 열렸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경기였다. 우리나라가 쇼트트랙 강국이고, 메달 가능성이 높은 종목이어서가 아니다. 수준 높은 쇼트트랙 경기를 보고 싶어서다. 쇼트트랙의 경기는 재밌다. 그 재미의 이유는 경기 진행 속도가 빠르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찰나의 순간으로 경기 흐름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맨 뒤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경기 중 추월하는 재미가 바로 쇼트트랙의 묘미다.


황대헌, 이준서 선수의 경기는 완벽했다. 전문 해설 위원도, 시청자인 나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약간의 몸싸움 정도는 일어날 수 있으나, 두 선수 모두 무리한 경기 진행을 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결승 진출을 해 놓고서도, 결과는 황당했다. 실격 사유는 석연치 않았고, 판정의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심판의 자질을 의심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속해서 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선수가 잘해서 견제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화가 났고 답답했다. 21세기 올림픽 경기에서 이런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 대체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경기인가.


경기력과 그들의 실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면 이렇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았고, 실력 역시 월등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몇 년을 올림픽만 보고 몸이 부서져라 뛰어 왔는데, 한 순간에 무너진 상실감과 박탈감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선수의 노력과 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스포츠는 더 이상 울림을 주지 않는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메달에 환호하고, 금메달에 박수를 쳐주는 것은 그들이 "1등"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메달 뒤에 숨겨진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공정하고 치열하게 잘 싸운 그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올림픽 대회의 중요성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 정복이 아니라 싸우는 것, 승리하는 것보다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잘 싸우기 위해선, 선수 개인뿐 아니라 정당한 경기와 판정이 필요하다.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경기를 위해 얼마큼 노력했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가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올림픽 메달 순위, 금메달 개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동안 그들이 얼마나 잘 견뎠고, 잘 싸웠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졌지만 잘 싸운 선수들에게 더 손뼉 친다. 공정하지 못한 경기에서 받은 메달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한 '1등'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not the triumph but the struggle. The essential thing is not to have conquered but to have fought well. - Pierre de Courbertin


인생을 살면서 불합리하고 납득가지 않는 상황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스포츠에서까지 통할 순 없다. 판정은 편파적이고, 번복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은 경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정당한 싸움판에서 치열하게 몸을 부딪힌 선수들만 억울할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흘린 땀 보다 가치 있는 건 없다. 이런 게 스포츠 경기라면 난 더 이상 스포츠를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코로나 3년째, 갑갑하고 막막한 시국에 스포츠 경기를 보며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내야 하는데, 오히려 반감만 든다. 이 힘든 시기 '다시 뜨겁게'를 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림픽 경기는 그들만의 대회, 그들만의 경기가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축제다. 우리가 바라는 '뜨거움'이 '열정'이지 '분노'는 아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앞에 달고 뛰는 선수들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려준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선수들이 잘못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매거진의 이전글마스크, 또 다른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