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나
"그래도 편한 건 있지 않아?"
솔직히 동의했다. 이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몰라 답답하면서도, 마스크 일상이 편한 건 사실이었다.
밖을 나설 때 핸드폰 다음으로 먼저 챙기는 건 다름 아닌 마스크였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지만, 공들여 화장하지 않아도 됐고, 날이 추울 땐 오히려 입 안 공기가 따뜻했다. 필요 이상으로 애를 쓰지도,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기에 몸도 한결 편했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마스크는 더 이상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여느 아르바이트와 비슷하게 근무할 때는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나'는 지워졌고 일개 직원으로 남았다. 유니폼을 입고 마스크를 쓰는 동시에 적당한 친절과 상냥한 말투만이 디폴트였다. 볼 양 끝이 떨리도록 입꼬리를 올리는 건 마스크 앞에선 사치였다. 얼굴 반 이상을 덮는 마스크는 진상 고객을 만나 입을 샐쭉거려도, (도레미파) 솔- 톤의 목소리만 내보이면 충분했다.
"즐거운 관람되세요"
거리두기와 인원 제한, 실내 취식 금지까지 강화되었어도 극장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세상은 늘 시끄럽고 상영관 안은 어두웠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근심과 걱정을 덜기 수월했다. 마스크도 감정까지 노동해야 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한결 덜어냈다.
마스크는 유니폼 같은 거였다. 마스크를 입고 벗으며 일하는 동안 '사회적 나'와 '일상적 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일과 삶의 균형만큼 중요한 게 '사회적 나'와 '일상적 나'의 거리두기다.
우리는 매일 같이 얼굴로 유니폼을 입는다. 밖에서 적당히 나를 감추고, 감정도 최대한 절제한다. 마스크가 편한 건 서로의 감정을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공유할 수 있어서다.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의 불편함은 오히려 스마일 증후군을 앓는 감정노동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존재다. KF 비말 차단 마스크는 서로의 비말 대신 일하는 동안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Korea Feeling을 없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