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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Feb 25. 202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0권 돌파: 영원한 증식

모든 작품이 고전이 될 때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400권을 돌파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한때 꿈꿨던 전권 독파의 꿈은 멀리 사라진 것 같다.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읽어야 할 다른 책들도 산더미 같은데.

문학전집은 일종의 고전을 선별하는 작업인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고전으로서의 의미가 약해진다. 갈수록 선별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유튜브 탑골공원이 유행했을 때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SBS인기가요를 24시간 재생해주는 그 채널은 선별의 과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방송을 통째로 보여줬다.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나는 좀 의아했다. 탑골공원이 없을 때도 우리는 90년대 가요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90년대, 또 그 이전의 가요들은 언제나 방송을 타왔고, 때만 되면 다시 회자되었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 노래를 자발적으로 찾아듣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작품을 고전이라 부른다.


고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는 지독한 생명력을 지녔다. 살아남지 못한 다른 대다수의 작품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시간이 일종의 선별 작업을 해주는 것이다. 살아남은 작품은 가장 혹독한 검증을 마쳤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검증 말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 재조명 받고 발굴되는 경우도 많다. 신중현을 한국 록의 대부로 재평가 하거나, 봉준호 감독 등이 김기영 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경우가 그렇다. 소리없이 사라진 양준일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대표적이다. 하지만 탑골공원 식으로 통째로 다시 내놓는 건 선별의 과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슈가맨 프로그램이 인기여도 모든 가수를 다시 재소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시대를 거쳐왔다고 해서 모든 가수를 다 기억하겠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십대들도 모든 현역 아이돌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런 애도 있겠지만.)



엄청난 판매량을 앞세워 계속해서 증식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목록은 출판사가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이 영원히 증식될 수는 없다. 고전이 과거의 모든 작품이 되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교양의 영역이 아니라 연구자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아카이빙 같은 것이 되버린다. 사료로서의 가치는 있겠지만 작품성까지 모두 확보해주지는 못한다. 마치 90년대 SBS 인기가요를 모두 다시 답습해서 당대 고전의 목록을 다시 뽑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 다음 번호를 붙여 목록을 늘려간다면 무조건 팔린다는 보장이 있기에 그 증식을 멈출 수도 없다. 과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창업주의 바람대로 천권에 이르고, 또 그 이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홈쇼핑으로 전집을 박스 채로 사들이는 사람들의 거실은 과연 세계문학의 아카이빙이 될 것인가. 그들은 그 책을 언제쯤 다 읽을 수 있을까. 보르헤스가 말한 무한한 크기의 도서관이 집집마다 있는 나라라니. 근사하긴 하다.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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